7월14일은 프랑스인들의 가장 큰 국가기념일이다. 1789년 이 날 파리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며 점화한 대혁명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7월14일은 또 앙시앵레짐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한 정치인의 생일이기도 하다. 1602년 7월14일 이탈리아의 페시나에서 줄리오 마자리니라는 사내가 태어났다. 그는 유럽 최강국의 재상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다가 1661년 파리 근교 뱅센에서 쥘 마자랭이라는 이름으로 죽었다.마자랭은 로마 교황의 사절로 파리에 머물다가 루이13세의 재상 리슐리외의 눈에 띄어 프랑스에 귀화했다. 앙리4세에서 루이14세에 이르는 프랑스 절대주의의 황금기는 국왕 못지않게 재상들이 주도했다. 왕이 자식에게 양위하듯, 이 재상들도 제 후임을 직접 골랐다. 리슐리외는 앙리4세의 비(妃)이자 루이13세의 어머니 겸 섭정인 마리드메디시스를 섬긴 탓에 루이13세의 친정이 시작된 뒤 궁정에서 쫓겨났지만, 이내 재상으로 발탁돼 옛 주인 마리와 대립하며 루이13세의 왕권 확립과 관료제 정비에 애썼다. 그가 발탁한 오늘의 주인공 마자랭은 루이13세의 아내이자 루이14세의 어머니 겸 섭정 안도트리슈를 도왔다. 그리고 마자랭이 발탁한 콜베르는 루이14세를 도와 프랑스 역사의 가장 찬란한 한 시기를 만들어냈다.
마자랭은 대외적으로 독일의 분열을 끊임없이 조장해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에 굳건히 놓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왕권 제한을 꾀하던 구귀족과 파리고등법원에 맞서 절대왕정을 실현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절대주의 정책은 구귀족과 관료, 시민들이 왕권에 맞서 이른바 프롱드의 난(1648∼1653)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 비록 구귀족의 기득권 집착으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 시민들이 일부 합세했던 탓에, 프롱드의 난은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 시도로 평가되기도 한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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