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작 이 정도를 따내려고 여주까지 왔습니까."12일 새벽 경기 여주군 한국노총 연수원에 모인 2,400여명의 한미은행 파업 노조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잠정 합의안을 읽어내려가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목소리는 노조원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곧이어 열린 합의안 설명회는 집행부 성토회장으로 변했고 간신히 열린 찬반투표에서는 600여명의 불참 등 진통 끝에 겨우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노조원들이 반발한 이유는 합의안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 고용안정 관련 조항은 추상적이기 이를 데 없었고 '노조와의 협의'라는 모호한 문구가 많았다. 실리 측면에서도 합병 보로금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기본급의 400%에 그친데다가 파업 기간의 임금마저 고스란히 날아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 파업은 은행측과 충분한 협상 노력이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과도한 주장들도 적지 않았다. 한 노조원은 "금융산업노조의 명분은 언제나 노조원들의 인식보다 4,5발짝 앞에 있었다"고 털어놓으면서 "그래도 집행부만 믿고 18일을 버텼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노조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상급단체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만 당한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내부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밀어붙이기식 파업은 안 한 것만도 못하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노조는 13일 금융권 총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에 돌입했다. 금융권 공동 임단협 재개일에 투표를 강행해야 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파업을 노사협상의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초기 압박용 카드 정도로 남발하는 노조의 행태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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