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우니까 노새에게 술을 4병 먹여.”노새 등에 타이어와 밀수품 등을 싣고 이라크 국경을 넘으려는 밀수꾼들이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다.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노새들은 대야에 철철 넘쳐 흐르는 술을 마시고, 이를 지켜 보는 소년 가장(家長) 아윱은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국경을 넘어 노새를 팔고 그 돈으로 불구의 형을 수술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경엔 밀수품을 노리는 무장강도들이 총을 쏘아댈 것이고, 부모를 저 세상으로 보낸 지뢰도 사방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취한 말들의 시간’(A Time For Drunken Horsesㆍ감독 바흐만 고바디)은 정의의 신(神)이 임무를 게을리 하는 시간이며, 우리의 어린 이웃이 먹을 것과 약이 없어 절망 속에 시름하는 시간이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어른들은 지뢰에 목숨을 잃고, 열 살 안팎의 어린이들이 밀수품 포장과 운반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쿠르드족의 운명을 과장없이 담담하게 보고한다. 이 담담함이 영화 속 슬픔을 증폭시킨다.
이란과 이라크, 터어키, 시리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 동네 바네.
소녀 아마네가 가족을 소개한다. 아버지를 지뢰로 잃은 뒤 가장 노릇을 하는 열 두 살의 오빠 아윱, 나이는 열 다섯이지만 세 살 이후 크지 않는 큰 오빠 마디, 마디의 수술을 조건으로 결혼을 결심하는 큰 언니 로진이 차례로 나온다. 실제 친남매인 아마네와 마디의 연기는 뛰어난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끼니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인력시장에서 온몸을 혹사당하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마련해야 하는 고단한 삶. 그러나 이란 영화에서 흔히 보듯 어린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막막함 앞에서도 해맑은 눈을 지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곧 생명을 잃게 될 정도로 마디의 상태가 악화되자 아윱은 수술을 위해 그를 데리고 눈보라 치는 국경으로 향한다.
매복한 무장강도들이 총을 쏘아대고, 술에 취한 노새는 고꾸라지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간다. 아이들의 북받치는 설움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누가 이 아이들을 절망의 벌판으로 내몰았을까. 처음엔 절로 가슴이 미어지다가, 나중엔 공분을 일으키는 영화. 극장을 걸어 나오면서 아이들이 눈에 밟히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30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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