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무엇을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고 정치세력들이 갈등하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 갈등구조 내지 정치적 전선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7년 민주화 이전의 한국 정치는 정권과 통치자, 반대 정당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어도 기본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지역균열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한국 정치에서 누구 못지않게 정치의 이 같은 측면을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탁월한 전략가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전선의 정치'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전선의 정치가'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던 때, 노 대통령은 총선 전망과 관련해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구도라며 자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즉 중요한 것은 세세한 것들이 아니라 선거가 친노 대 반노의 대결이냐, 아니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같은 낡은 정치세력 대 새로운 정치세력 간의 대결로 판이 짜여지느냐 하는 전선의 내용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지적대로 17대 총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멍청한 탄핵 강행 자충수에 의해 탄핵 대 반탄핵의 대결구도로 발전했고 그 결과는 당연히 열린우리당의 압승이었다.
최근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쟁만 해도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측면을 잘 읽을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고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다수 국민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노 대통령은 문제를 둘러싼 전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전환시켜 돌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 퇴진운동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를 사실상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수구언론과 기득권세력의 음모로 몰고 가고 있다.
다시 말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조선 동아의 수구세력 대 반조중동의 개혁세력 간의 대결구도로 몰고 감으로써 정면 돌파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이 기득권세력의 저항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 전 '참여 없는 분권정부'라는 칼럼(6월 22일자)에서 지적했듯이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지난 번 탄핵 사태와 17대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연 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수구세력 대 개혁세력의 대결로 몰고 가는 전선의 정치를 통해 여론의 반전을 가져오고 성공적으로 돌파해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조중동과는 거리가 먼,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언론과 평론가들조차도 이 같은 전략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는 그렇게 믿지 않지만 전선의 정치라는 전략의 차원에서 조중동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경우이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행정수도 반대여론을 조중동의 음모의 결과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경우이다. 이는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지나치게 일면적이고 '피해망상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에 비판적인 국민들의 여론이 조중동 탓이라는 인식은 행정수도 이전에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무런 자기 생각이 없이 조중동의 음모에 놀아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우매한 백성들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고비마다 전선의 정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 그러나 장마다 꼴뚜기일 수는 없고, 지나친 전선의 정치는 오히려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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