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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꾸는 올림픽]<2>올림픽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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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꾸는 올림픽]<2>올림픽과 과학

입력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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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는 신화를 극복하려는 첨단과학을 거부할 수 있을까.올림픽 무대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인 ‘찰나(크샤나ㆍ약 0.013초)의 경쟁’을 넘어 0.001초의 승부로 바뀐 지 오래다. 세계 절정의 고수들은 4년 동안 흘린 비지땀과 갈고 닦은 기량뿐 아니라 최첨단 장비와 신기술로 무장하고 있다. 이미 인간 한계의 시험장인 올림픽은 ‘첨단과학의 각축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108년의 오디세이(여행)’를 거쳐 아테네로 귀향한 2004올림픽은 기록 단축을 향한 인간의 투혼이 어느 때보다 강렬할 전망이다.

고대올림픽(BC776~AD393)은 모든 선수가 공평하게 알몸과 맨발로 경기를 치렀다. 꼼수의 여지는 없었고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경쟁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곤(Agon)’은 라이벌을 꺾는다는 뜻보다 상대를 북돋아준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따라서 승자는 있으되 기록은 없었다. 4년마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다고 믿었기에 기록은 무의미했다. 승자에겐 황금 낫으로 잘라 만든 올리브관(월계관)을 씌워줬다. 나무가 썩으면 사라지듯 영웅은 스러졌고 올림픽 우승의 영광은 그 어떤 물질로도 보상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1,000년의 세월을 넘어 시작한 근대올림픽(1896~)은 달랐다. 승자에겐 부와 명예가 보장되고 각 대회의 기록은 초 단위까지 계산돼 영원히 남는다. 1924년 파리대회부터 채택된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란 올림픽 표어는 거역할 수 없는 인류의 목표가 됐다.

특히 올림픽 무대에서 육상 100m와 마라톤, 수영 등 기록경기는 유니폼 및 장비, 경기시설 발전 등 스포츠과학의 발전을 부추기고 있다. 1896년 1회 아테네대회에 참가한 육상 선수들은 고대올림픽의 산실 파나시나이콘 경기장의 울퉁불퉁한 흙 길을 뛰어야 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흙과 재를 섞어 만든 ‘신더 트랙(1908)’에 이어 ‘타탄 트랙(1968)’이 등장할 때까지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류의 70%는 오른손잡이, 심장의 위치(왼쪽) 등 인간의 생리적 특성을 감안해 1913년 확정된 ‘트랙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역시 스포츠과학의 산물이다.

세계기록이 9초78(팀 몽고메리ㆍ미국)에 머물러 있는 육상 100m는 인간한계 극복의 최선봉에 서 있다. 12년 도널드 리핀콧의 첫 세계기록(10초6) 이래 87년 동안 단축한 시간은 고작 0.82초. 100m를 3초60에 주파하는 치타(시속 100㎞)에 비하면 3분의 1수준이다.

역대 100m 스타의 장점만 뽑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하면 9초50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합성복제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한 0.01초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 치열한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모리스 그린(미국) 등 육상 스타들은 땀을 신속하게 흡수하고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열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고기능성 원단을 사용한 최첨단 유니폼으로 무장하고 있다.

신기술 역시 기록 향상의 바로미터다. 높이뛰기에선 ‘배면뛰기’가 신기록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했다. 68멕시코대회에서 딕 포스베리(미국)는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등으로 2m24에 걸린 바를 넘어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배면뛰기는 이후 모든 높이뛰기 선수에게 적용됐다. 공중에서 3.5걸음이나 휘젓는 멀리뛰기의 ‘히치킥’도 스포츠 기술 혁명을 일궜다.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기록경쟁 종목은 수영이다. ‘인간어뢰’ 이언 소프(호주)와 ‘수영신동’ 마이클 펠프스(미국)가 벌일 세기의 대결은 2000시드니 대회에 첫선을 보인 첨단 ‘전신수영복’ 대결로 모아진다.

우선 소프는 비행기의 운동역학을 본 따 겨드랑이부터 허리 아래까지 유연하게 물이 흐르도록 줄이 들어간 아디다스의 제트 컨셉트(ZETCONCEPT)를 입게 되고, 펠프스는 상어 피부의 돌기를 적용한 스피도의 ‘패스트스킨(Fastskin) Ⅱ’을 착용한다. 비행기와 상어의 싸움인 셈.

근대올림픽에서 과학 발전의 중요성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올림픽이 기술과 돈 가진 자들만의 잔치란 비아냥거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수단이 목표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처럼, 올림픽의 주인공 역시 ‘건전한 신체에 깃든 건전한 정신’을 지닌 인간일 뿐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첨단 스포츠과학 한국 적용 사례

첨단 과학기술을 스포츠에 적극 접목, 올림픽 메달색깔을 바꾸려는 노력이 진행되고있다. 현재 양궁 레슬링 체조 등 금메달 획득이 유력한 종목을 중심으로 16명의 한국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들이 배치돼 새벽 6시부터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다.

과학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보고 있는 케이스는 남자 육상 800m의 이재훈(고양시청). 그는 지난 2년간 연구원 성봉주 박사의 도움으로 GPS(인공위성 자동항법장치)를 이용, 기록을 0.27초 단축해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중ㆍ장거리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따냈다.

이재훈이 허리춤에 GPS를 달고 레이스를 펼치면 성 박사는 800m를 1m간격으로 나눠 구간별 순간속도와 심박수 등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사이벡스(등속성 근력측정기)를 이용한 근력 보강훈련이 채택됐고, 600m 이후 막판스퍼트가 떨어지는 약점도 교정됐다.

그 결과 이재훈은 지난달 전국 육상선수권대회 예선에서 1분46초79로 골인, 올림픽 참가 기준기록(1분47초00)을 넘어섰다. 2002년 5월 아시아 그랑프리대회(1분47초06) 이후 정체돼 있던 기록이 크게 향상된 것.

여자역도 무제한급의 장미란(원주시청)도 수혜자로 꼽힌다. 연구원 문영진 박사는 장미란이 바벨을 들 때 무릎을 살짝 굽혔다 펴는 이중 무릎 굽힘동작을 하지 않아 기록에 손해를 본다는 것을 영상분석을 통해 발견, 약점을 보완했다. 4월 장미란이 대표선발전 용상에서 170㎏(종전 168.5㎏)의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도 이 덕분이다.

육상 창던지기의 박재명(태백시청)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창던지기에서 최적의 투사 각도는 26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체육과학연구원 연구결과 28도로 밝혀졌다. 박재명은 이를 바탕으로 투사동작을 교정, 지난 3월 83.99m를 던져 1년전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81,46)을 2.53m나 늘렸다.

이로써 필드종목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경쟁기준기록(81.80m)을 뛰어넘어 메달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밖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의 유망주 김인섭은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 3시간씩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 텐트에서 지내는 훈련을 하고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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