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다매’.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 등을 집필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시나리오 창작집단의 이름이다. 주축은‘올드보이’의 박찬욱,‘휴머니스트’의 이무영 감독. 그들이 이번에는 연극이다.
직접 쓴 ‘썬데이 서울’이 박근형 연출로 15일부터 8월15일까지 대학로 정미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영화배우 배두나가 제작비를 대고, 주연까지 맡았다. 냄비를 파는 세일즈맨(김영민), 택시운전사(신덕호), 식당에서 일하는 연변처녀(배두나)의 이야기로 밑바닥에서 바라 본 서울의 모습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박리다매
박찬욱(이하 박)-‘박’씨와 ‘이’씨가 만났다는 뜻이죠. 각본을 같이 쓰면 그 이름으로 나갑니다. ‘삼인조’(1997년)부터, 8편 정도 함께 한 것 같아요.
이무영(이하 이)-‘썬데이 서울’은 IMF 터지고 난 뒤 쓴 건데, 죄 없는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는 시대상황을 그렸죠.
박-우리 작업방식은 노트북 한 대 놓고, 농담하고 웃으며 써나가는 거죠. 한명이 타이핑하고.
이-정신적 노동은 다 똑같은데, 육체적 노동(타이핑)은 분명 제가 제일 많이 합니다.
배두나(이하 배)-내가 왔을 땐 다 놀아요.
박-‘썬데이 서울’은 각자 영화로 연출하려다 미뤄졌어요.
연출가 박근형을 선택한 까닭은?
이-그런데 배두나 어머니인 김화영씨가 희곡으로 하면 재미있겠다고 해서 연극으로 바뀐 거죠. 작품 성격상 자연스레 박근형씨가 연출을 맡게 되었죠.
박-박근형 연출작은‘청춘예찬’ 등 두 편만 봤지만 천재적이에요. 너무 웃기고 그로테스크해요.
배-소극장 연극에 강하세요.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해요.
박-송강호가 기국서 연출가를 스승으로 꼽잖아. 기국서의 극단 76이 박근형의 극단 골목길 전신이야. 엉뚱하고 기발한 전통이 있지. 편협한 리얼리즘을 완전히 벗어났달까.
배-박근형 연출가는 연기지도가 특이해요.
이-배우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는 유연한 방식이죠.
배-대사를 잘 못하면 벙어리 역을 시키고, 발 동작이 잘 안 되면 휠체어 타는 역을 맡긴대요.
박-두나는 그러다가 휠체어 탄 벙어리 되는 거 아냐? 그리고 이무영씨는 배역 없어지는 거 아냐? (이무영은 냄비회사 사원 역을 맡았다)
이-뉴욕에서 연극 공부한 이후 14년 만에 무대에 서니까 녹슬었단 느낌이 드네요. 돈 받고 출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박-돈을 왜 줬겠어. 좋은 배우들 많은데.
배-‘박리다매’와 박근형은 많이 다르지만 또 어울려요.
박-대사를 만드는 재주는 우리가 연극판 못 따라가죠. 영화 하면서 좋은 작가들을 연극판에서 여럿 추천 받았는데, 재미있는 작가들이 많더군요. 앞으로 연극도 많이 볼 겸 제 회사인 모호프로덕션도 대학로로 옮길 생각입니다.
연변처녀 배두나
이-두나는 일하기 좋은 배우죠. 태도가 보여. 제작비 전액 투자한 것도 훌륭한 자세지.
배-어머니가 하신 거죠. 점점 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
박-썩 많이 벌지도 못하는데 후회가 되나 봐.
배-제작비 투자는 어머니가 먼저 제안했어요. 연극을 발전시키자는 취지겠죠. 어머니가 ‘수익이 생기면 연극에 써라’고 하셨고, 저는 ‘그럽시다’ 했죠.
박-두나는 거리낌이 없어요. 엉뚱하고 비관습적이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죠. 두나가 연변처녀로 흔히 떠올릴만한 얼굴은 아닌데… 또 이렇게 안 생기리란 법도 없잖아요. 스테레오 타입은 재미 없어요. 우린 처음부터 두나랑 하고 싶었어요.
이-왜, 연변처녀 같은데.
배-그래도 영화는 확실히 감독예술이에요. 제가 박찬욱 감독님에게 너무 의지해서 박 감독님이 짜증내잖아요.
이-조심해, 그게 좋은 거만 빼먹는 거야.
두 영화감독과 첫 연극무대에 서는 영화배우는 술잔을 기울이러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재기 넘치는 세 명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썬데이 서울’은 어둡고 슬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남자들은 가족을 건사하려고 냄비를 팔다가 거지가 되거나 중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기 위해 보험사기를 노리고, 연변처녀는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범죄에 끼어 든다. 최정우 고수희 등 골목길의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했다. (02)3672-6989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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