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섭이가 아무 탈없이 돌아와 너무나 기쁩니다. 이제는 함께 집회에 나가야죠. "지난해 전북 부안에서 격렬했던 원전수거물관리센터(핵폐기장) 반대 시위현장에서 시위자와 진압 경찰(의경)로 마주쳤던 부자(父子)가 아들의 군제대로 고향에서 재회했다.
부안군 변산면 격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신상규(52)씨와 아들 용섭(22)씨. 신씨가 군에 보낸 아들과 맞닥친 것은 면회장소가 아닌 시위 현장에서였다. 원전센터 반대 시위가 거셌던 지난해 8월 부안군청 앞 집회에 참석했던 신씨는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의경 가운데서 안타깝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2002년 5월말 서울의 기동대에서 의경으로 군 복무를 시작한 아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부안으로 파견된 것을 그제서야 알았던 것이다.
"군청 앞에서 주민들을 제지하는 아들을 보고,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핑 돌아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신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꽉 막힐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 변산면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신씨. 항상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그는 이후 9차례나 시위 현장에서 아들과 계속 마주쳐야 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들 부자는 이 때마다 눈빛으로만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원망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억지로 울음을 참던 아들 용섭씨도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부안∼전주 50㎞ 구간의 핵반대 삼보일배 해단식 경비에 투입됐다가 절을 하며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용섭씨는 "나이가 많이 드신 아버지가 설마 삼보일배는 안 하겠지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맨 앞에 서 계셨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아버지 모습을 봤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제대해 고향에 돌아온 용섭씨는 이날 부안수협 앞 광장에서 열린 '핵폐기장 백지화 투쟁 1주년 기념대회' 현장에서 아버지와 만나 인근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그 동안 못 나눈 부자의 정을 나눴다.
"앞으로는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핵폐기장 반대 시위의 선봉에 나서겠습니다"고 말하는 아들의 손을 꽉 잡으며 신씨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안=최수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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