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도시 위에서’. 샤갈이 첫 부인 벨라와 신혼의 행복한 순간을 형상화한, 러시아 시기 대표작인 이 작품 한 점만 평가액이 1,000만 달러(약 120억원)에 달한다. 샤갈의 현존 작품 중 최고가를 호가하는 작품이다. ‘도시 위에서’는 파리의 그랑팔레,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토리노 현대미술관을 거쳐 한국에 상륙했다.‘도시 위에서’이외에도 파리 시립 미술관의 '꿈'은 700만 유로 (약 100억원), 유대인극장 연작 패널화 4점도 각각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호가하는 걸작이다.
‘색채의 마술사 : 샤갈’ 전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샤갈의 대표작 120여 점을 모아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진정한 ‘회고전’이다. 50만명이 관람한 파리의 그랑 팔레(2003년3월14일∼6월23일)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년7월26일∼11월4일)전에 이은 순회전이다.
샤갈의 한국전은 특정 미술관이나 전시 전문재단의 소장품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대가의 이름만 내걸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끼워넣는 기존의 이벤트성 전시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프랑스 니스의 국립샤갈미술관 소장품 60여 점을 비롯해, 트레티아코프미술관, 스위스 샤갈재단,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시립미술관 등이 소장한 걸작으로 구성했다. 전체 작품 가격만 보험가 기준으로 1억달러(약 1,200억원)에 달하는, 한국 전시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다.
세계 도처에 소장된 작품들을 모은 전시인 만큼 작품 운반도 복잡했다. 이탈리아 토리노 현대미술관 전에 선보인 ‘도시 위에서’ 등 16점과 니스의 국립샤갈미술관의 소장품 60여점, 프랑스 리용, 모나코 등에 있던 작품들은 우선 파리로 이동, 파리 시립미술관, 퐁피두센터 등의 소장품과 합류해 9일 한국에 도착했다.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소장된 유대인극장 패널화 4점은 별도로 10일 한국에 공수됐다.
세계적 작품들인 만큼 인천공항에서 미술관까지는 무진동 특수차량에 의해 옮겨졌다. 차량의 적재함에는 레일이 깔려 작품이 담긴 나무상자가 움직일 수 없게 돼 있다. 작품들은 크레이트라고 불리는 나무상자에 담겨 오는데 그 안에는 완벽한 완충 소재들이 가득 차 있고 그 안에 그림이 모셔져 있다. 물론 삼엄한 경비 속에 그림이 옮겨졌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Marc Chagall 연보
▶ 1887년 7월7일 러시아 비테프스크(현재 벨로루시)에서 출생
▶ 1906년 유대인 화가 예후다 펜의 화실에서 미술 수업 시작
▶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
▶ 1910~14년 파리 라뤼슈 거주
▶ 1914년 베를린 슈트림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러시아로 귀향
▶ 1915년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
▶ 1919년 비테프스크 미술학교 개교
▶ 1920년 유대인극장 패널화 제작
▶ 1921년 자서전 ‘나의 삶’ 집필 시작
▶ 1922년 러시아를 떠남
▶ 1924년 파리 바르바장주-오데베르 미술관 회고전을 계기로 앙드레 말로와 친교
▶ 1926년 뉴욕 라인하르트미술관에서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 개최
▶ 1941년 미국 망명
▶ 1944년 부인 벨라 사망
▶ 1948년 프랑스 정착. 제2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판화부문 인터네셔널 상 수상
▶ 1950년 생폴드방스 정착
▶ 1952년 발렌티나(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
▶ 1955년 ‘성서메시지’ 연작 시작
▶ 1973년 51년 만에 소련 방문,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개인전 개최. 프랑스 니스의 국립샤갈미술관 개관
▶ 1977년 프랑스 레종도뇌르 대십자훈장을 받음. 루브르박물관서 샤갈 회고전
▶ 1985년 3월28일 생폴드방스 자택에서 98세로 사망
■문학에도 상호에도…너무나 친숙한 샤갈
샤갈은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가다. 프랑스에서도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과 어깨를 겨룬다. 우리에게도 샤갈은 시나 소설에 또는 레스토랑 상호로 그의 이름이 원용될 만큼 친숙하다.
샤갈은 회화작품에서 눈(雪)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샤갈은 눈과 뗄래야 뗄 수 없게 됐다. 김춘수 시인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때문인듯하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그러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제목의 샤갈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적 표류를 다룬 소설가 박상우의 소설도 이 시의 제목을 땄다.
반면 샤갈의 생애를 그린 영화는 거의 없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노팅 힐'에 샤갈의 작품 '결혼'을 등장, 샤갈의 주요 모티브인 연인의 이미지를 빌리고 있을 뿐이다.
문향란 기자
■11월 13일부턴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색채의 마술사 : 샤갈’ 전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15일 개막, 10월15일까지 석 달 간 열린다. 지방관람객도 세계적 거장의 작품 세계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서울전이 끝난 뒤에는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옮겨 11월13일부터 내년 1월 16일까지 전시된다.
서울 시립미술관 2,3층 전시실을 사용, 한꺼번에 500명 이상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다. 전시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30분~오후 9시, 토ㆍ일ㆍ공휴일 오전 10시30분 오후 8시이고, 매주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입장료는 25세 이상 성인 1만원, 청소년(13~24세) 8,000원, 어린이(7~12세) 6,000원. 20인 이상 단체 관람할 경우 1,000원씩 할인되고, 학교 등에서 단체 관람을 별도로 요청할 경우에는 1,000원 할인이 추가된다. 최근 번역 출간된 샤갈의 자서전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를 구입해도 1,000원 할인 티켓을 받을 수 있다.
현장 매표 시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덜고 싶다면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를 통해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초·중·고생 대상 샤갈전 감상문 공모
한국일보사는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색채의 마술사 : 샤갈’전 감상문을 공모한다. 거장의 명화를 심도 있게 감상하고 추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마련된 이벤트이다. 전시 관람 후 전시 작품 전반 또는 특정 작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10월30일까지 보내면 된다. 분량은 초등학생이 원고지 5장 안팎, 중ㆍ고교생 원고지 10장 안팎. 대상 1명에게는 장학금 50만원을 수여하고, 초등부와 중ㆍ고등부 각각 금상(장학금 30만원) 1명, 은상(장학금 20만원) 2명, 동상(장학금 10만원) 3명씩을 선발한다. 원고는 우편으로만 접수하며, 보낼 곳은 우편번호 110_792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번지 한국일보 샤갈전시팀. 문의 (02)724-2905, 샤갈전 홈페이지 www.chagallkorea.com
■마르크 샤갈展 7월 15일부터
‘20세기 최고의 색채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걸작이 한국에 온다. 한국일보사가 창간 50주년을 기념, 15일부터 10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색채의 마술사 : 사갈’전은 80년 가까이 창작활동을 계속한 샤갈이 전생애에 걸쳐 발표한 대표작 120여점을 선보이는 대형 회고전이다. 초기 대표작 ‘도시 위에서’를 비롯해 100호~200호 대작 위주로 유화 40여점과 판화, 데생, 과슈 등이 나오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다. 샤갈은 꿈과 그리움을 채색한 화가였다. 이번 전시는 샤갈의 연대기를 쫓는 대신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모티프에 따라 ‘연인’ ‘상상’ ‘파리’ ‘서커스’ ‘성서이야기’ ‘호메루스의 오디세이’ ‘지중해의 세계’ 등 7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테마별로 주요 작품을 살펴본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연인
연인은 샤갈이 평생에 걸쳐 즐겨 그린 주제. 첫 부인 벨라와 두 번째 부인 바바와의 행복한 추억을 담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샤갈이 1915년 벨라와 결혼하고 2년 뒤 제작한 ‘도시 위에서’에서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 위 하늘을 날아간다. 50여년이 지난 뒤에도 사랑의 환희는 여전하다. ‘파란 하늘의 연인’ ‘생 폴 위의 부부’등에서는 프랑스 지중해 생폴 드 방스의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몽환적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 손을 맞잡거나 서로 꼭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 그들은 꽃다발을 선물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님으로써 사랑에 빠진 삶의 환희를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전쟁과 혁명, 유대인 박해 등을 겪으며 이국을 방랑한 그이지만, 사랑은 이같은 현실세계의 모든 고통을 망각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셈이다.
◇파리
파리는 샤갈이 화가로서 담금질하고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한 곳. 러시아 태생인 샤갈은 파리를‘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전세계를 떠도는 방랑의 삶을 접고 프랑스에 정착한 뒤, 그의 작품에는 파리가 주요한 테마로 부상한다. 그러나 파리라는 도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에펠탑과 동물 상징들이 비자연적 구도로 자리잡은‘굿모닝파리’나 바스티유 광장의 중앙기둥과 여러 인물, 동물의 모습이 기묘하게 공간에 배치된 ‘바스티유’처럼 상징과 환상이 가득하다.
◇성서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다시 돌아온 샤갈은 30년대 초 인간 창조, 천국, 아담과 이브, 모세와 율법 등 구약성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서의 삽화작업을 시작했다. 독실한 유대교 집안 출신인 샤갈은 초기 작품부터 비테프스크의 풍경과 함께 기도하는 유대인 노인, 랍비 등을 등장시켰다. 그만큼 기독교와 성서는 그의 작품세계의 뿌리를 이룬다. 2차대전 후 샤갈은‘성서메시지’작업에 깊이 천착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아, 프랑스 니스에 있는 국립샤갈성서메시지미술관을 태동시켰다.‘강변에서의 부활’‘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상징했다.
◇서커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샤갈이 1920년 모스크바 유대인극장에 그린 패널화 시리즈 ‘무용’‘연극’‘음악’‘문학’이다. 스탈린 집권 후 극장이 폐쇄되면서 창고에 처박혀 있다 1970년대에 발굴돼, 복원작업을 거쳐 91년에 선보였다. 이번 서울 전시가 사상 세번째 공개다. 샤갈은“서커스에서 마법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서커스의 풍경에 매료됐다. 곡예사, 악사, 광대가 대중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감동을 주듯 화가라는 직업도 그래야 한다는 믿었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도입하면 작품이 풍부해진다고 믿었다. 샤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서커스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았다.
◇상상
당나귀, 말, 염소, 수탉, 암소들이 사람과 일체가 되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마치 연인처럼 속삭이기도 한다. 하늘과 땅은 서로 뒤집혀 있고, 동물과 사물, 인물들은 무중력상태에서 부유하듯 공중을 떠다닌다. 원근법과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비자연적 구도와 환상적 색채 때문에, 샤갈의 작품은 ‘꿈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1910년대 초반의 첫 파리시절, 그는 시인 아폴리네르로부터 ‘초자연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꿈’ ‘비테브스크 위의 누드’ ‘추시계와 자화상’등은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등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의 화면에 뒤엉키며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에 유년시절과 첫 부인 벨라를 향한 그리움, 망명생활의 우울한 일상의 메타포를 등장시킨다. 가령 샤갈은 팔레트나 붓을 쥐고 있는 수탉, 당나귀 등 동물의 형상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땅거미 질 무렵’은 샤갈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눈 내린 풍경을 형상화했다.
◇지중해
1950년 샤갈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생폴 드 방스에 정착, 85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남프랑스 지중해의 따스한 햇볕과 바다는 그의 작품경향에 변화를 준다. 즐겨 그린 행복한 연인, 꽃 등이 지중해의 풍광과 더불어 이전보다 한층 밝고 풍부해진 색조로 형상화된다. 파스텔 색조와 부드러운 선으로 처리된 ‘인어공주와 소나무’‘꽃을 든 여인’등은 샤갈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황혼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여유가 있고 긍정적이다.
◇오디세이
샤갈은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판화 등 폭 넓은 영역에서 색채의 연금술을 펼쳤다. 생전에 샤갈이 유명해진 것도 회화보다는 판화를 통해서 였다. 1922년 자서전‘나의 삶’부터 삽화작업을 시작했는데,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지면서는 그 비중이 커졌다. ‘다프네와 클로에’‘천일야화’‘템페스트’ 등의 삽화를 제작하며, 샤갈은 그리스 신화와 서구문학으로까지 시야를 확대했다. 석판화 작업으로 72~75년 호메루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의 삽화 82점을 제작했는데, 그 중 컬러작품 43점이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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