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안서동 태조산 기슭. 집 짓는 일에 매달려온 지 벌써 1년이 된 이승진(43), 장인순(46) 부부의 이마 가득 땀이 송이송이 맺혔다.돌이 가득한 땅을 고르고 다져가며 세우기 시작한 두 채의 집 중 28평 규모의 안쪽 집은 벌써 완성돼 네 식구가 살고 있고 식당을 열 계획으로 만들고 있는 나머지 한 채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자로 재고 톱으로 썰어가며 나무집을 직접 만들어가는 40대 부부, 그들은 왜 여기에 있으며 왜 그런 노동을 즐기는 걸까.
3개월 목표로 시작한 집 짓기, 어느새 1년
“고향이 시골이라 흙과 나무를 보고 자랐는데, 성냥곽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다보니 몸과 마음 모두 답답하더라고요. 몸에 좋고 마음도 편하게 해주는 곳에서 살고 싶어 전국을 돌며 여러 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을 둘러봤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통나무집이었습니다.”
천안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씨 부부가 통나무집 짓기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7월 중순. 딱딱한 아파트의 각 잡힌 공간이 갑갑해 수년 전부터 마음 속에 품어온 ‘자연 친화적인 집’을 향한 첫 발걸음을 디딘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강원도 횡성의 한국통나무학교에서 3주 과정을 수료한 후 강원도 홍성에 있는 한 농업전문학교로 농기구 창고 건축 자원봉사를 다녀온 것이 집 짓기 공부의 전부. 워낙 손재주가 좋아 뭐든지 뚝딱 만들어내던 기본 실력과 유명한 목수였다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질 하나만 믿고 첫 삽을 떴다.
시작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몇 년 전 집 지을 생각으로 사 둔 땅을 파내자 돌만 열 두 트럭이 나왔다. 폭이 좁은 진입로 탓에 장비와 차가 오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 1달 예정으로 시작한 기초 공사에만 3개월 반이 걸렸다.
어느 정도 터가 준비된 11월 하순. 이때 한국통나무학교의 김병천 교장이 골조 조립을 위해 집터를 찾았다. 골조는 집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통나무로 기둥과 들보를 세워 집의 뼈대를 잡아주는 단계라 김 교장의 도움을 받았다. 통나무집은 금속 못을 쓰지 않고 끼워 맞추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한치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국내 통나무집 만들기의 최고 달인인 김 교장이 학교에서 만들어온 통나무를 조립해 하루 만에 골조를 만들어주고 떠난 후, 나머지 작업은 모두 이씨 부부의 몫으로 남았다.
"함께 집을 지으면 가족간 대화가 많아집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집을 완성하려 했는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려 하니 벌써 12월이더군요. 산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양말과 장갑을 여러 겹씩 끼고 일했습니다. 빨리 집을 짓고 싶은 마음에 봄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이지요. 하필 지난해 충청도 지역에 쏟아져 내린 폭설 때문에 큰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씨 부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공사에 이씨의 두 형과 두 자녀도 틈틈이 품을 더했다. 장비를 주고 받고 한쪽에서 통나무를 들어올리면 다른 한쪽에서 이를 고정하고…. 손발이 맞지 않으면 혼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맘이 착착 맞는 가족은 어떤 기술자보다 든든한 ‘지원병력’이다.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생 아들은 주말마다 건축 현장을 찾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한 후 작업복 차림으로 복귀하기 일쑤였다. 도구 이름이라고는 망치와 펜치 밖에 몰랐다는 부인 장씨도 어느덧 ‘레일건’,‘타카’,‘구삼팔’ 등 웬만한 남자도 알기 어려운 현장 용어의 달인이 됐다.
“전문가들이 모여 집 짓는 현장에는 대화가 없어요. 다음 단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알고 도구를 착착 건네주니깐. 그렇지만 서로 연구하면서 집을 지으면 입으로 할 일이 많아집니다.”
비워둔 다락방, 기다리는 마음
굵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기둥과 들보에 나무를 덧대고 그 사이사이에 단열재를 넣으면서 집은 조금씩 제 모양새를 찾아 나갔다. 지난달, 안쪽 집이 다 지어져 온 가족이 이사를 했고 37평 규모의 식당용 바깥집도 자잘한 마무리와 테라스 공사만 끝내면 완성이다. 제법 흥분될 법도 한데 이씨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집을 짓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또 다른 두 아이들이 생각나서다.
이씨는 아들 학교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고아원에서 자란 고등학생 나이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약 2년 전부터 돌보아 왔다. 무릎까지 찬 눈을 치워가면서 공사를 하며 집이 지어지면 행복하게 같이 잘 살자는 얘기를 많이 나눴건만 이들은 집이 완성되기 전 차례로 이씨 곁을 떠났다.
“두 아이를 위해 두 개의 아담한 다락방도 특별히 만들어두었는데…. 뭔가 답답했던지 11월에 여자아이가, 1월에 남자아이가 차례로 멀리 떠나더군요. 연락처는 알지만 부담될까 싶어 전화도 잘 하지 않습니다. 빈 방을 볼 때마다 그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서운한 표정을 짓는 이씨가 안쓰러운지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돌린다.“텐트 하나를 조립해도 마음이 뿌듯하잖아요. 이렇게 집 두 채를 지어놓고 보니 어찌나 마음이 든든한지…. 아주 큰 인생 목표 하나를 마친 기분이에요. 방을 비워두었으니 아이들도 돌아오겠죠.”
이씨는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싶다면 무엇보다 전문가를 찾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시작하라고 권한다. 요즘은 인터넷 등에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동호인과 전문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기초를 탄탄히 터득하면 그 다음은 짓는 이의 개성과 취향을 마음껏 담아낼 수 있다.
“타일 하나, 주춧돌 하나까지 우리 손으로 직접 고르고 붙였어요. 기술자를 부른 것은 전기ㆍ통신 및 하수도 공사를 할 때 뿐이었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가족간의 대화도 돌아왔지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멋진 집 한 채를 지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입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통나무 집짓기-어디서 배우나
통나무집의 가장 큰 장점은 내구성이 좋고 더위와 추위를 잘 견딘다는 것이다. 특히 뼈대는 500년이 넘어도 끄덕 없기 때문에 부속만 바꿔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또 나무는 습기를 머금었다가 건조할 때 뿜어내는 특성를 갖고 있어 늘 적당한 습도로 유지해준다.
영화나 동화책에 흔히 등장하는 것처럼 통나무를 층층이 쌓아 만든 집은 ‘낫치(notch)’ 스타일. 그러나 나무를 수입해 써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통나무가 많이 드는 이 방식으로 집을 지으려면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기둥과 들보만 통나무로 세우는 ‘포스트앤빔(post and beam)’ 방식이 더 선호된다.
통나무집 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뼈대 세우기. 설계도에 맞춰 뼈대에 쓰일 통나무를 만드는 일은 20일 정도 걸리지만 조립은 하루면 충분하다. 과정이 까다롭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집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편이 낫다.
뼈대를 세우고 난 후 지붕을 덮고 벽을 막은 후 각종 설비를 추가하는 작업은 능숙한 사람의 경우 한 달 정도 걸린다. 그러나 처음 짓거나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집을 지으면 기간은 자연히 늘어난다. 토지 구입비용을 제외하고 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평당 100만~120만원 정도. 부위별로 전문 인부를 불러 쓰면 평당 200만원선이다.
캐나다 유명 통나무집 학교 ‘알렌 맥키 스쿨’의 한국 분원인 ‘한국통나무학교(www.logschool.net)’는 3주 단위로 통나무집 짓기 과정을 운영한다. 재료비 포함한 수강료는 150만원이며 7월26일 새 과정이 시작된다.
이 밖에 우림통나무건축학교(www.logschool.co.kr), 생태건축학교(www.ecoarch.org) 및 한옥문화원(www.hanok.org) 등에서도 통나무집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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