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요즘 최고 인기 드라마인 ‘파리의 연인’과 올 봄 종영된 ‘사랑한다 말해줘’의 공통점은?뜬금없다구요? 그럼 힌트 하나. 태영(김정은)이 사촌동생과 사는 옥탑방과 병수(김래원) 영채(윤소이)가 묶던 하숙집하면 생각나는 것. 이제 뭔가 그려지나요? 두 드라마 모두 서울 종로구 창신동을 무대로 하는데요, 이는 병풍처럼 둘러친 서울성곽을 멋진 배경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주말 서울여행으로 성곽을 따라가는 역사탐험을 추천합니다. 성곽을 오르다 만나는 도심의 멋진 전경은 성곽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가 한양 천도 이후 쌓기 시작한 성곽으로 축조 당시 둘레는 약 17k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성곽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 등을 거치며 상당 부분 훼손됐지만 복원작업을 통해 현재 10km 가량이 제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중 산책하기 좋은 코스는 낙산, 성북동, 인왕산 등 3곳. 모두 1~2시간 거리로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어 나들이 하기에 그만입니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 쾌적한 산책- 낙산코스
낙산코스의 출발점은 동대문.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나오면 이대부속병원 옆으로 난 ‘창신 성곽길’이 서울성곽으로 안내한다. 동대문의 시끌벅적 소음이 사라질 즈음 걷기 쉽게 포장된 산책로가 시작된다. 다양한 나무와 풀이 성벽과 어우러졌고 곳곳에 설치된 벤치, 정자와 가로등이 운치를 더한다.
성벽 중간 중간에 이웃 충신동으로 통하는 쪽문이 나있어 두 동네를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석축의 단을 세며 쉬엄쉬엄 오르길 20분, 어느덧 낙산의 정상 낙산공원이다. 옛 시민아파트를 헐고 조성한 낙산공원은 ‘서울의 몽마르트 언덕’.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에서 정면의 북악 인왕산, 왼쪽으로는 남산까지 도심의 산과 사대문 안 빌딩숲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쉽게도 낙산의 성곽답사는 공원에서 끝난다. 그 너머는 집들로 막혀있기 때문. 이왕 하루 나선 성곽여행, 잠시 대학로나 삼선교쪽으로 내려왔다가 성북동코스에서 다시 이어보자.
■ 숲속의 성벽- 성북동코스
성북동 코스는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앞 삼거리 서울과학고 뒤에서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잘 정돈돼 있다. 낙산코스 보다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 걸음은 자주 멈춰진다.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혀가며 오르길 10여분, 성벽 너머와 연결되는 쪽문이 나타났다. 문밖을 나서니 마치 시골을 옮겨놓은 듯한 딴 세상이다. 호박넝쿨이 성벽을 타고 오르고, 빈 터마다 배추, 고추, 상추가 가득 심겨져 있다. 허름한 달동네 우리 이웃의 터전이다.
다시 산책길로 되돌아와 잠시 오르다 보면 군 부대 때문에 길이 끊긴다. 대신 성벽 너머로 산길이 시작되는데 성북동 성곽답사의 진미는 이제부터다. 산길 입구는 올 봄 숨막힐 듯 향을 뿜어냈을 아까시 숲이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서니 성벽에 붙은 산딸기가 검붉은 빛을 발하고, 성벽에 기댄 소나무는 솔잎 터널을 이룬다. 산위에 쌓은 성곽이라 석축 돌덩이가 작아 몽글몽글 성벽의 선이 곱다.
군사보호구역에 막힌 산길은 숙정문까지 이르지 못한 채 내려와야 한다. 하산길 끝은 성북동 약수터로 산행에서 흘린 땀을 보충하는데 그만이다.
버스 성북초등학교앞 정류장 1111(성북동-하월곡동), 2112(성북동-휘경동)
■ 호쾌한 전경- 인왕산코스
인왕산 코스는 산책이라기 보다는 산행이 적절할 듯. 출발지는 사직공원이다. 경사가 급한 인왕산길(인왕스카이웨이)을 15분쯤 허덕허덕 오르다 보면 무악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무악동쪽 길을 따라 100m 가량 가면 인왕산등산로가 시작된다.
인왕의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200m를 올랐을까 성곽의 성가퀴(성벽 윗부분에 쌓는 지붕이 있는 낮은 담)가 없어졌다. 복원이 아직 덜 된 탓이다. 하지만 세월의 더께로 시커먼 석축위에 반듯하고 새하얀 돌지붕이 빚어낸 부조화가 사라져 되레 안정감을 준다.
석축을 디디며 오르길 30분, 드디어 인왕산 정상이다. 낙산에서 본 서울이 정겹다면 인왕에서의 전경은 호쾌하다. 발 아래 경복궁, 청와대는 물론 한강 너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청운동으로의 하산길은 성벽 원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답사의 절정. 성벽은 물론 성가퀴도 일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시간에 마모돼 둔탁해진 돌지붕이 정겹다.
등산로의 끝은 다시 인왕산길이다. 철거중인 청운아파트를 통해 내려오면 자하문터널을 만난다. 인왕산 등산로는 공휴일이나 일요일 다음날은 입산휴식일로 등산이 통제된다. 버스 사직공원정류장 171번(국민대-월드컵공원), 272번(면목동-남가좌동), 606번(부천 상동-종로1가), 7020번(홍은동-남대문)
/글 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성북동 코스 즐길 곳
성곽여행의 여운을 달래고 출출한 속을 채우기에는 성북동이 좋다.
성북동에는 근ㆍ현대 서울의 문화유적이 곳곳에 숨어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성북동의 대표 명소. 만해가 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이 집은 ‘조선 땅 전체가 감옥’이라며 만해 생전 불을 때지 않았다고 한다. 덕수교회 안에는 이재준가가 한폭의 동양화처럼 앉혀있고, 길 건너에는 상허 이태준이 머물며 ‘달밤’ ‘황진이’를 집필한 집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밖에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 의친왕의 별궁이었던 성락원이 숨어있고, 고급 요정에서 문화공간과 종교시설로 탈바꿈한 삼청각, 길상사도 가볼 만하다.
성북동은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한적해 예전부터 기사식당이 많았던 곳. 이들 기사식당들의 음식 맛이 소문나면서 성북동은 최근 맛의 골목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경신고와 성북초등학교삼거리 사이에는 서울돈까스, 왕돈까스, 마전터(보리밥, 보쌈), 우리밀국시(칼국수, 수육), 노란집(갈치, 고등어조림)이 심우장에서 성북초등학교삼거리 구간에는 성북동묵밥, 금왕돈까스, 장수기사식당, 쌍다리기사식당, 성북동돼지갈비집 등이 유명하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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