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외국 물 먹은 젊은 작가의 지적 허영기거니 했다. 표지를 보고서도 ‘파리의 에뜨랑제(이방인)’라는 말의 울림을 노린 흘러간 유행쯤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첫 장을 읽으면서 ‘어?!‘ 싶더니 단숨에 3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쉼 없이 읽었다. 다 읽고는? “와~!”‘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2002년)을 받은 작가 권지예가 91~99년의 만 8년간 겪은 프랑스 생활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모음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글은 수필과 수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종 경쾌하고 발랄하다. ‘쪽 팔리게…’식의, 점잖은 수필이 쪽 팔려 하는, 일상어들이 난무한다. 읽는 이조차 낯 붉힐 만한 내밀한 느낌이며 경험들이 일순의 주뼛댐 없이 터져 나온다. 이게 수줍은 새댁(당시에는)의 글이라니.
둘째 아이 낳던 날, ‘아래’를 꿰맨답시고 들러붙은 의사들이 실습생들이었던 모양이다. “느낌상 내 몸이 실습용 시접 꿰매기 헝겊이 된 듯하다.” ‘뒷손 안가게 바짝 쪼롸서’ 하라던 친정 엄마의 당부도 있던 터. 그 경황에 산모는 묻는다. “저어, 그 구멍… 문제없을까요?”
두 아이와 한참 프랑스어를 익히던 시절. 우리말과 프랑스어가 뒤섞인 식탁 정담의 한 토막. ‘여보, 내 똥 좀 더 가져가… 엄마! 나 까까!… 우엑, 대구똥!’ 번역하자면 ‘여보, 내 참치(thon) 좀 더 가져가… 엄마! 나 똥(caca)!… 우엑 더러워(degutant)!’
웃음 뒤의 여운이 읽는 맛을 더한다. 지저분한 파리 지하철에서 변태에게 봉변을 당하고 느낀 문화대국 프랑스의 이면. 프랑스인들의 난필을 해독하지 못해 겪는(처방전을 잘못 읽어 좌약을 입에 털어넣는 등) 실수들. 개 사료용 튀밥을 사서 강정을 만들어 먹던 설 전날의 웃음도 있다.
체류 6년째 어느 봄날 일기는 친정엄마가 보낸 메주 세 덩이의 단상으로 시작한다. ‘…어언 다섯 해. 유학생으로서, 또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얼마만큼 떠오른 걸까. 가장 장맛이 잘 난다는 (소금물)염도만큼? 그 세월만큼 부력이 생긴 걸까?’ 작가는 “낭만의 도시라는 파리의 이면, 그 낭만의 이면을 재미있게 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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