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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7>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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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7>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입력
200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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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극인생을 이야기 할 때면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 있다.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나는 그 작품을 1969년 12월 17일 한국일보사 12층 소극장 개관기념공연으로 한국 초연했다. 물론 주최는 한국일보사, 주간한국, 주간여성이었다.그 해 봄, 나는 주간한국이 주최한 제1회'시인만세'란 행사를 서울시민회관 대극장(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출했다. 현역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하는 모임인데, 재래식이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살린 새로운 문화이벤트로 해보자는 것이 당시 김성우 주간한국 부장의 생각이었다. 행사를 무사히 마친 어느날 김 부장과 정홍택 기자등과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신축한 사옥 12층에 소극장을 개관하는데, 개관기념공연으로 연극을 한편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는 연극을 하려고 해도 공연장이 없어서 못하던 시절이었다.

당장 새 한국일보 사옥으로 갔다. 붉은 카페트가 깔린 아담한 소극장. 무대도 좁고 조명시설도 없어 연극하기에는 불편한 공간이었으나 연극에 대한 열정이 하늘을 찌를듯한 시절이었다. 일단 개관기념공연을 맡기로 했다. 작품 선정에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관기념 공연이니까 새로운 형식, 문제의식이 담긴, 그리고 소극장 무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작품.

그런 기준에서 생각하니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출연진은 그 바로 전에 해롤드 핀터의'덤 웨이터'를 함께 했던 김성옥(블라디미르), 함현진(에스트라공)에 김무생(포조), 김인태(럭키) 등이었고 장종선(무대미술), 김희조(작곡)등이 주요 스태프였다. 연습도 한국일보사 8층에선가 했다. 신축 초기여서 아직 입주하지 않은 넓은 방을 당시 이기석 총무국장의 배려로 연습장으로 쓸 수가 있었다.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 해 노벨문학상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새뮤얼 베케트로 결정된 탓이었을까? 회원권(200원이었다)이 개막 1주일전에 완전 매진됐다. 내 연극인생에서 개막전 좌석이 전회 매진되어 막을 올린 것은'고도를 기다리며'초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도를 기다리며'초연은 문화예술계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듬해 한국영화예술상에서 대상과 작품상, 연기상(함현진)을, 한국문화대상에서는 대상과 연출상 그리고 연기상(김성옥) 등을 수상했다.

따지고 보면 극단 산울림의 역사는'고도를 기다리며'초연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공연을 계기로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고, 70년 10월 창단기념공연으로'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한국일보사 소극장에 올림으로써 극단 산울림이 출범했다. 한국일보사는 상으로서도 내 연극활동에 많은 격려를 보내주었다. 우선 68년 봄, 나의 국립극단 첫 연출 작품인'환절기'(오태석 작)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후에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받았는데, 나의 첫 연출상이기도 하지만 그때 나에게 준 용기가 결국'고도를 기다리며'초연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도 고비마다 한국백상예술대상은 나를 격려하고 정신차리게 했다. 86년 '지붕위의 바이올린'으로, 2000년 '고도를 기다리며'로 두번이나 동시에 받은 연출상과 대상은 언제나 나에게 힘든 연극현실을 넘어설 뒷받침이 돼주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동안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89년 프랑스의 아비뇽을 시작으로 아일랜드의 더블린, 폴란드의 그다니스크, 일본의 토쿄, 시즈오까 등 해외로 무대를 넓혀 한국연극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데도 기여해 오고 있다. 그러나 공연무대가 어디건 잊을 수 없는 것은 초연 때 한국일보사 12층 소극장에서 느꼈던 흥분과 감동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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