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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아킬레스와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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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아킬레스와 거북이

입력
200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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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할리우드'와 만났을 때…. 최근 화제가 된 블록버스터 영화 '트로이'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영화에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등 매력적인 인물이 여럿 등장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아킬레스일 것이다.그리스의 전설적인 투사이자 마라톤 선수인 아킬레스는 철학자 제논의 패러독스에도 등장한다. 이 패러독스에 의하면 천하의 마라톤 선수인 아킬레스도 거북이보다 뒤에서 출발한다면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킬레스가 뛰는 속도가 거북이의 속도보다 10배 빠르고, 거북이가 아킬레스보다 100m 앞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자. 거북이와 동시에 출발한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출발한 지점으로 가는 동안 거북이도 얼마간은 전진한다. 거북이는 아킬레스의 속도의 1/10로 움직이므로 아킬레스가 100m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10m 앞서 있게 된다.

다시 아킬레스가 달려 그 지점까지 가면 거북이는 10m의 1/10인 1m를 아킬레스보다 앞서게 된다. 이렇게 계속하면 거북이와 아킬레스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혀지지만 거북이는 아킬레스보다 항상 조금이라도 앞서 있게 되므로,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

실제로 경주를 하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제논의 패러독스에 내재된 논리적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여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에 따른 위치를 따져보면, 출발 1분 후에 아킬레스는 출발점으로부터 100m 지점에, 거북이는 110m 지점에 있다. 그렇지만 출발 2분 후에 아킬레스는 출발점으로부터 200m 지점에, 거북이는 120m 지점에 있으므로, 이미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앞지른 상태이다.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능해지는데, '무한급수의 합'을 통해 계산해 보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는 것은 10/9분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가지 패러독스가 유행했는데, '크레타인인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는 문장이 유명하다. 이를 응용한 것이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거짓말쟁이의 패러독스'이다. 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이 문장은 거짓이 된다. 또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이 문장은 참이 되어야 한다. 즉 참이라고 하면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하면 참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수리철학자 러셀이 제기한 '이발사의 패러독스'도 있다. 어느 마을에 한 이발사가 있는데, 이 이발사는 자신의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마을 사람의 수염만 깎아 준다. 그렇다면 이 이발사는 자신의 수염을 깎을 것인가, 깎지 않을 것인가? 만일 이 이발사가 자신의 수염을 깎는다면, 스스로 자기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의 수염만 깎는다는 전제에 위배되므로 자신의 수염을 깎을 수 없다. 반대로 이 이발사가 자신의 수염을 깎지 않는다면, 자신의 주장에 의해 이발사는 자기 수염을 깎아야 한다. 수학사에서 나타났던 이러한 패러독스들은 당시의 수학자들을 당혹스럽게도 했지만, 수학의 이론적 토대를 견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협찬: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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