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마르크 샤갈 지음ㆍ최영숙 옮김
다빈치 발행ㆍ1만5,000원
‘색채의 연금술사’ 마르크 샤갈(1887~1985)은 스스로 천재라고 믿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화가가 되거나 첫 연인 벨라와의 만남, 모두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정규 교육도 별로 받지 않았고, 20세기 전반을 풍미한 야수파, 입체파 같은 예술사조로부터 받은 영향력도 고집스럽게 부인했다.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대가이면서도 작품세계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5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막 올리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앞두고 번역 출간된 자서전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원제 ‘La Vie’)는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의 뿌리를 이해하기에 좋은 가이드다. 1922년 고국 러시아를 영원히 떠나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98년이나 살았던 그의 인생의 반토막도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환상을 꿈꾼 샤갈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좇기에는 충분하다. 그만큼 샤갈의 작품에 모티프로 자주 등장하는 꽃, 연인, 동물, 마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유년ㆍ청년 시절의 삶과 환상에서 유래한다.
한국일보사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색채의 마술사 : 샤갈'전 포스터. 배경 작품은 샤갈의 대표작 '도시 위에서'이다.
러시아 소도시인 비테프스크의 가난한 유대인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은 샤갈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다. 대표작 ‘도시 위에서’는 어릴 적 매료된 비테프스크의 도시 풍경이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인물 이미지는 징집을 피해 침대 밑에 숨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던 것과 오버랩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 러시아 농촌의 삶에서 등장하는 암소 등의 상징도 어린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깊다.
화가를 꿈꾸던 샤갈의 주변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상 숭배를 금기시하는 유대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반길 리도 없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도 정식 미술 교육은 엄두도 못냈다. 공립학교 때 급우가 잡지 삽화를 베껴 그린 것을 보는 순간에야 그는 본능적으로 예술적 직관을 깨닫고,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기간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저명한 유대 화가 예후다 펜의 화실과 페트로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예술학교에서 보낸 4년이 전부다. 20대 초반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화가로 다듬어지던 과정과 혁명 전후 혼란한 러시아 사회에서 예술가로서의 느꼈던 고뇌 등도 솔직하게 담아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은, 대단히 독창적인 천재’로 샤갈은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이 책은 간혹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샤갈이 또 다른 재능, 즉 문학적 직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혀진다.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에는 10월15일까지 계속되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의 입장료를 1,000원 할인 받을 수 있는 티켓도 들어있다.
● 샤갈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샤갈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하기에는 지난해 번역 출간된 '샤갈'(한길아트 발행)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책의 저자 모니카 봄-두첸은 샤갈을 냉철하게 분석, "샤갈은 이질적인 문화와 다양한 기법을 두루 거친 화가"라며 "동유럽 유대 세계라는 유년기의 편협한 환경에 집착했으나 이같은 특수성을 넘어서서 보편적 타당성을 지니는 정서적, 정신적 공감을 자아냈다"고 평가한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창해ABC북 시리즈로 각각 나온 '샤갈'도 샤갈의 세계를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샤갈의 첫 부인으로 예술적 영감의 근원이기도 한, 벨라의 소설 '첫 만남'(서해문집 발행)도 나와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