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향기강옥구 지음
강 출판사 발행ㆍ9,500원
고 강옥구 시인의 유고 문집이 나왔다. 시인 고은에게는 ‘보리살타의 영혼’이었고, 청화스님에게는 ‘진지한 구도인’이었던 그가 자신의 시(‘내가 꽃이라면’)처럼 ‘이끼 덮인 바위 곁/ 이름 모를 들꽃으로’ 59년을 살다 간 지 4년. 고인과 40여년 간 망년(忘年)의 교분을 나눈 강원용 목사(평화포럼 이사장)가 원고를 갈무리하고, 문단과 교계 원로들이 마음을 보태 낸 ‘무위의 향기’.
고인은 이화여대 재학시절인 1958년 경동교회 성가대원으로 강 목사를 만난다. 강 목사의 눈에 그는 신심 깊은 모나리자의 모습이었던가 보다. 세계기독교회협의회(WCC) 참가차 프랑스 파리에 들렀다가 일부러 짬을 내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의 그림을 사서 선물할 정도였다니.
두 사람의 서신교환은 고인이 63년 미국으로 건너 간 뒤에도 이어졌고, 그 편지 글은 강 목사와 수필가 허세욱 씨에 의해 ‘들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범우사, 87년)’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 사이 고인은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78년), 월간 ‘문학사상’ 미국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허밍버드의 춤(96년)’ 등 시집과 수필집, 번역서 등을 냈다.
강옥구 시인의 불교 귀의는 버클리대 수학시절 은사로 선불교에 심취해 있던 글렌 글로잔 교수와 평생 반려의 연을 맺으면서 본격화한다. 기독교에서 출발해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 달라이 라마, 틱낫한, 청화, 운허 스님, 미국의 유명한 선시인 게리 스나이드, 잭 폴리 등과도 친교하며 구도의 여정이 깊어진다.
청화스님에게서 수계(법명 서원)도 받는다. 92년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을 번역해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3년 뒤 그의 방한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의 캘리포니아 알마니 인근의 집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종교계와 문단 원로들의 사랑방이었다. 이어령 전 장관과 권민영 교수, 시인 김남조 전숙희 민영등을 그렇게 만나 친교한다.
‘무위의 향기’에 실린 글들은 시와 수필이다. 하지만 부처와 구도자들의 가르침으로도 읽힌다. 일본 다도의 대가 센 리큐의 일화부터 일반인에게는 생경한 세계적 명상가들의 글 등 동서고금의 말씀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거리감 없이 편하다. 법구경의 난해한 구절이며 의상대사의 법성계, 육바라밀 수행의 세계 등을 본인 일상의 고운 체로 걸러 쓴 까닭이다. 그가 얻은 도는 보일 듯 말 듯한 선(禪)의 장막 뒤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다 문득 보게 된 철 이른 동백에서 시공에 구애되지 않는 명상을 배우고, 비 새는 천장의 구멍을 막으려다 달빛까지 막을까 망설이는 노부부의 시에서 무위의 행복을 생각한다.
시든 상추 잎에 물을 준 뒤 새로 돋는 생기에서 ‘반야바라밀의 보시’를 깨닫기도 한다. 그는 “물을 주는 순간에는 상추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다는 마음뿐, 나도 없고 상추도 없고 물도 없었다”고 적었다. 그는 깊은 감성으로 세상 사물을 응시했고, 보시의 일상을 꿈꾸고 실천했다.
고인은 2000년 5월 간암 진단을 받지만 영적 동반자였던 남편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자 남편 간호를 위해 수술을 포기, 그 해 10월 연화장의 세계에 든다. 고은씨가 추모시에서 ‘…누가 가난한가 누가 아픈가… 그런 것만 찾아 다니며 떡이 되고 약이 되고 꿈이 되어주고 오랜 친구가 되시던 이…’라고 했던 강옥구 시인. 생전 마지막 산문집 ‘일만송 수행일기’는 장례 당일 출간돼 식장을 찾은 이들에게 마지막 이별의 선물로 전해졌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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