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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양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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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양심의 의미

입력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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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푸념을 했다. "요즘 양심 때문에 마음이 영 찜찜하다"고. 이 친구가 무슨 큰 잘못을? "나이 돼서 당연히 군대 갔다 왔고, 먹고 사는데 허덕이다 보니 사상 따위로 감옥 갈 일은 없었고…. 그랬더니 어느덧 비양심적으로 살아온 게 되더라." 물론 농담이었다. 최근 법원 판결에 따른 양심적 병역기피 논란에다, 의문사위의 비전향 장기수 민주화운동 인정 등으로 다시 불거진 양심수 문제를 빗댄, 그러고 보니 양심 관련 문제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대한 양심 고백 압박도 있다. 이래저래 별 지은 죄 없는 이들까지 괜히 뜨끔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양심의 뜻은 물론 '착하고 어진 마음'이다. 한자 '良'의 훈이 그러하니 이게 앞에 붙으면 다 아름다운 단어가 된다. 양민은 착한 백성이고, 양서는 좋은 책이고, 양식은 건전한 식견이듯. 맹자에서도 양심은 인의(仁義)의 마음과 동의어다. 남을 배려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측은지심, 수오지심이 곧 양심이다. 순자는 인간이란 게 본시 악한 존재여서 이를 배워 익혀야 한다고 했지만, 맹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지니고 태어나는 본성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양심은 좋은 것이니 그렇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는 용어들이 탐탁할 리 없다.

■ 하지만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의식(意識)'이다. 영어 'conscience'의 번역이다. 도덕적 함의가 있긴 하나 착하고 바른 본성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에 가깝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에 대한 정의도 다르지 않다. 판단이란 게 동일한 사안에도 사람마다, 혹은 시대나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여기서 양심은 상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다. 우리로선 어색하지만 그래서 영어에는 'bad conscience(나쁜 양심)'란 용어도 성립한다.

■ 그러니 별 생각 없이 군대 갔다 해서 자괴할 일도, 더더욱 비전향 간첩 등에게 혹여 도덕적 우월감을 부여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통상의 쓰임새와 다른 용어 때문에 선량한 대부분 국민들에게 자칫 부당한 열등감이나 소외감이라도 느끼게 한다면 그건 안될 일이다. 차제에 이를 신념이나 소신 등 탈(脫)가치적 어휘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는 없을까.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려면 정의(定義)와 판단이 일치해야 하며, 그러려면 삶의 형식이 일치해야 한다"고 했다. 하긴 지금 우리는 각자의 정치적, 이념적 지향에 따라 삶의 형식부터가 너무나 달라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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