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2월 31일. 이틀 전 비행기에서 내린 유학생 박종오(49) KIST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장은 앞으로 자신이 다닐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IPA연구소로 향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된 휴가가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인 한스 바르네케(70) 교수는 한국에서 오는 첫번째 제자를 직접 만나러 나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단장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길을 몰라 헤매다 무려 2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연구소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 바르네케 교수는 추운 바람에 눈까지 맞으며 건물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싫은 내색 없이 웃는 낯으로 박 단장을 맞더니 식당으로 데려가 큼지막한 고기를 사주었다. 주린 배로 허겁지겁 먹었던 탓일까. 박 단장에게 바르네케 교수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다.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중 1999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사업단으로 450명의 연구진을 이끌고 있는 박종오 단장은 7년 동안의 독일 유학을 통해 바르네케 교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바르네케 교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산공학자라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서 배운 것은 로봇이나 마이크로 시스템 같은 공학 지식보다는 공학도로서의 자세였다. 박 단장은 "독일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어느날 문득 바르네케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로보트 연구소인 IPA 연구소는 바르네케 교수의 철학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곳이었다. 일개 연구원으로 소장을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연구소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바르네케 교수를 알 수 있었다. "살벌할 정도로 아주 역동적인 조직이었어요. 모두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나는 것 같았으니까요." 어느날 바르네케 교수가 직접 작성해 전 직원의 책상에 놓여진 한 쪽 분량의 연구 가이드라인은 박 단장에게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연구보다 실험이 우선이고, 고객은 왕이며, 관료주의와 싸우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공학이란 과학과는 달리 시대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말이었죠."
87년 귀국한 박 단장은 지금까지 바르네케 교수의 가이드라인대로 정신없이 일하며 살았다고 한다. 낮에는 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공학 기술을 상용화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고객을 대하듯 사소한 말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실험에 매달렸다. 그를 만나려면 저녁에 연구소로 가야 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 결과 박 단장은 로봇 기술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마이크로 로봇 분야에서 캡슐형 내시경, 안경형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PDA 등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박 단장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바르네케 교수에게 삭막한 성격 탓에 특별히 보은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독일 공학계와는 줄곧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독일을 찾을 때도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들르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나마 지난해 한국 제자 8명의 이름으로 서울에서 바르네케 교수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워크숍을 열은 것이 제자로서 최소한의 도리였다는 생각이다. "먼 한국에서 제자들이 모셨으니 바르네케 교수님도 대단히 흐뭇해 하셨어요."
박 단장이 바르네케 교수에게서 배운 것 중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경영을 공부하는 것이다. 롤라이 카메라 공장의 공장장을 맡기도 했던 바르네케 교수는 학생들에게 '공장경영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실질적인 학문인 공학은 경영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공학도는 CEO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신 거지요." 박 단장도 언젠가 MBA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공계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래 전 바르네케 교수가 자신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미래를 이끌 공학도들에게 공학도의 자세, 공학도에게 필요한 것들을 일러주고 싶어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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