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숨진 최종길(사진) 전 서울대 교수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는 책임을 인정하고 10억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화해권고는 판결에 이르기 전 재판부가 직권으로 양 당사자에게 합의를 권하는 것으로 양측이 권고문을 전달받은 후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이혁우 부장판사)는 7일 유족들이 낸 67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국가의 역사·도덕적 책무, 원고들의 고통 등을 고려할 때 국가가 최 교수의 죽음에 책임을 인정, 1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화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 같은 결정은 사건 후 오랜 시일이 지나 판결의 근거가 될 사망원인 입증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차선책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양측의 사망원인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나 원고들이 뒤틀린 과거를 바로잡고자 소송을 제기해 배상금으로 공익단체를 설립하려 하는 점, 피고측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잘못을 반성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피해를 보상하려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화해권고의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최 교수가 고문을 당해 숨졌는지 여부와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는지 여부 등 쟁점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을 미루고 "이의가 제기되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 결정이 알려지자 유족측 변호인단은 "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본다"며 환영의사를 표했고 법무부는 "검토 후 이의 제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73년 10월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중정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다 숨졌으며 중정은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한 뒤 조직보호를 위해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유족들은 인권단체와 함께 30년간 최 교수의 사인을 밝혀 줄 것을 국가에 요청했으나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다 2002년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최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숨졌다"고 발표하자 소송을 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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