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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속 세상] 한국전쟁 중에 탄생한 첫 한국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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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속 세상] 한국전쟁 중에 탄생한 첫 한국은행권

입력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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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일한 법화(法貨)인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는 한국은행은 1950년 6월12일 설립됐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했던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이 유통되고 있었다.한국은행은 조선은행권을 대체할 한국은행권을 발행해보지도 못한 채 창립 13일만에 한국전쟁을 맞아야 했다.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면서 한국은행도 본점을 급히 대전으로 이전했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했기 때문에 본점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금괴 일부와 조선은행권 일부는 옮기지 못했다.

이바람에 한국은행은 불과 40억원(圓)의 현금만을 보유하게 됐는데, 전시자금 수요 등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였다.

결국 6월29일 한국은행은 일본 정부에 요청, 일본대장성 인쇄국을 통해 불과 10여일만에 최초의 한국은행권을 제조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1,000원권과 100원권 2종류였는데, 당시 급박한 상황 탓에 1,000원권 도안소재로는 주일대표부가 소장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 초상을, 100원권 도안소재로는 주일대표부 소장책자에 수록된 광화문 사진을 사용하였다.

이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현 한국은행권과는 달리, 손으로 만져보면 돌출부위가 쉽게 느껴지는 요판(볼록)인쇄 방식을 적용하지 않아 위조에 취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요판인쇄 방식을 활용하지 않은 덕분에 10여일만에 한국은행권을 제조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긴급제조된 한국은행권은 1,000원권으로 152억원, 100원권으로 2억3,000만원이었다.

새 은행권은 1950년 7월13~14일 미 군용기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 7월22일에 피난지 대구에서 최초 유통됐다. 그러나 북한군이 점령지역내 한국은행에서 약탈한 조선은행 1,000원권을 불법발행하고 100원권도 불법인쇄 및 발행함으로써 경제를 교란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한국은행은 조선은행 100원권 유통을 정지시키고 그 해 9월15일부터 1953년 1월16일까지 5차례에 걸쳐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조치를 실시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한 생산위축과 거액의 군사비 지출로 물가가 1945~52년중 400배 이상 급등함에 따라 정부는 1953년2월 화폐가치를 100분의 1로 낮추는 긴급통화조치를 실시하면서 새로운 화폐단위인 ‘환’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최초 한국은행권도 그 역할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62년 정부는 또 한번 화폐가치를 10분의 1로 낮추고 현재 사용하는 ‘원’ 화폐를 발행했다. 따라서 최초의 한국은행 1,000원(圓)권 액면가치를 현재의 원으로 산술계산하면 1원에 해당된다.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액면가치와는 관계없이 보관상태가 아주 양호한 경우 수집가들 사이에 상당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한국은행 본점의 화폐금융박물관에서 실물을 확인 할 수 있다.

김태형(한국은행 발권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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