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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백지위임신탁제 행정편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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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백지위임신탁제 행정편의적

입력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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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가 개혁입법안 심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심의에 앞서 이미 각계에서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개혁입법 가운데 하나가 행정자치부가 마련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들어있는 백지위임신탁 제도이다.공직자가 주식을 보유하고 거래할 경우, 사익과 공익 간의 재정적 이해충돌을 야기함으로써 '정직한 부패'(honest graft)를 발생시키거나 불공정한 직무 수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초해 나온 것이 백지위임신탁 제도이다.

백지위임신탁 제도는 공직자의 재산과 직무 사이에 발생하는 이른바 '공직자의 재정적 이해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재산공개 대상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거래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최근에 드러난 공직자 비리는 사적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발생하는 부당한 의사 결정이나 알선과 청탁 등 이권 개입의 형태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법률적 근거가 없어 예방과 단속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백지위임신탁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1급 이상의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17대 국회의원은 제외하는 등 제도적용 대상을 제한하는 것은 상징성과 정치적 고려에 치우친 개정안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한 백지위임신탁 제도가 공직자 간의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 안은 주식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의 위치에 있는 경제부처 간부 등 이해충돌의 우려가 높은 공직자의 주식투자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아울러 공직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당한 재산증식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개정안에 들어 있지 않아 걱정이다.

실제로,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재산은 주식에 한정되지 않으며 재산 이외의 겸직, 전직, 영리추구 행위 등에서도 직무상 이해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대책도 당연히 개정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이해충돌에 따른 기업경영권이 문제될 때는 직무회피를 통해 해소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공직자의 이해충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척(除斥)의 원칙'과 '박탈(剝奪)의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예컨대, 사학재단 이사장은 교육부장관에 임명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척의 원칙이고, 건설회사 주식을 가진 건설교통부 장관이 건설관련 국책사업 결정과정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박탈의 원칙이다.

최근의 공직윤리에 대한 관리전략은 직무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이로 인한 부패 발생을 최소화하는 데 모아져 있다. 주식의 백지위임신탁 제도는 이해충돌 여부에 대한 사전 예방적 규제의 필요성과 그 실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긴요하다.

공직자의 보유재산과 직무의 연관성에 따른 이해충돌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전면적인 입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백지위임신탁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특정 직급 이상의 공직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백지위임신탁을 강요하는 행정자치부의 개정안은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특히 개정안에 대한 위헌 논란이 있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직무보다 직급을 따져 1급이니 4급 이상이니 하는 획일적 기준으로 적용대상에 선을 긋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백지위임신탁 제도는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장이 될 수 없다'는 공직윤리에 충실하게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성남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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