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7일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흔히 7·7선언으로 불리는 노 정권의 이 이니셔티브는 그 뒤 남북대화의 적극적 모색, 사회주의권과의 경제 교류 및 수교 등 이른바 북방정책의 시발점이 되었다. 노태우는 이 선언에서 자주·평화·민주·복지의 원칙에 입각해 민족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문화·경제·정치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을 천명하고, 이를 위한 여섯 항목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그 실천 지침 6개항은 남북 동포 사이의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의 자유로운 남북 왕래를 위한 문호 개방, 이산 가족의 서신 왕래 및 상호 방문 적극 지원, 남북간 교역을 위한 문호 개방, 비군사물자에 대한 한국 우방과 북한 사이의 교역 동의, 남북간의 소모적인 경쟁 대결외교 지양과 남북 대표간의 상호 협력, 북한과 한국 우방 사이의 관계 개선 및 사회주의 국가와 한국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한 상호 협조다.
7·7선언은 1988년 봄부터 민간에서 조국통일촉진운동이 확산되고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6·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추진하자, 정권측이 이에 대응해 통일 논의의 기선을 제압하고 대북 접촉 창구를 독점하기 위해 내놓은 조처로도 해석된다. 동기가 어땠든, 이 선언은 세 해 뒤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을 핵심으로 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2000년 6월의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열매 맺게 될 남북 화해 무드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 한 해 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할지를 당시 정권이 예측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선언은 결과적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선취한 능동적 제스처이기도 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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