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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드라마 '장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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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드라마 '장길산'

입력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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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장길산’ 홈페이지(tv.sbs.co.kr/jang)에 들어가면 ‘장길산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홈페이지에서 얼마나 콘텐츠를 이용했느냐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게임인데, 그 계급 구분이 참 재미있다.제일 밑의 계급이 천민(그것도 ‘노비’와 ‘광대’로 자세하게도 나눴다)이고, 그 다음부터 농민, 승병, 부두령, 소두령, 책사를 거쳐 ‘장길산’에 이르면 최고 계급이 된다. 장길산이 가장 높은 ‘계급’이라! 홈페이지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게임이라곤 하지만, 장길산이 궁극적으로 하려던 것이 계급혁파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드라마 ‘장길산’을 보면 이런 게임이 그렇게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장길산’은 철저한 계급 드라마, 어쩌면 왕권신수설을 옹호하는 드라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작품이다. 물론 계급의 정상은 장길산이고, 장길산의 주위에 있으면 높은 계급이며, 장길산의 반대편에 있으면 무조건 악역이다.

관청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일반 포졸들은 무조건 민중을 괴롭히는 적이 되고, 반대로 장길산 주위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대장부’들이다. 길산의 아버지 장충(최재성)은 무예에 출중하고 호방한 성격을 가진 의인이고, 갑송(정준하)은 천하장사이며, 박대근(김영호)은 엄청난 거상이다.

장길산? 그야 당연히 ‘내추럴 본 히어로’. 어린시절부터 어른 몇명은 때려눕히고, 여자 아이 하나를 구하기 위해 세도가의 집에 들어가 ‘결투’를 신청하고, 그의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든다. 타고난 영웅이 그의 동료들과 함께 민초들을 구한다는 ‘사명’을 갖고 쉴새 없이 ‘싸우는’ 것이 드라마 ‘장길산’이다.

그래서 ‘장길산’은 민중의 드라마가 아니라 민중을 ‘구원’하겠다는 ‘영웅’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영웅성은 그들의 싸움실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은 쉴새 없이 포졸들과 싸우고, 처음 만날 때도 서로 싸우는걸 도와주거나 서로 싸우면서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고 친해진다.

그래서 드라마의 대부분은 액션 신과 ‘영웅’ 장길산이 지금 무엇을 하는가에 맞춰져 있고, 관리와 토호들이 민초들을 괴롭히는 과정은 지극히 단순한 선과 악의 묘사로 축소된다. 왜 그 관리 밑에 있는 일개 포졸들마저도 민초들을 괴롭혀야 하는지, 왜 민초는 그렇게 수탈 당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민초들? 그들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우는 딱 세 가지다. 탐관오리들에게 고통 받을 때, 의적들이 나눠주는 재물을 받으며 기뻐하고 고마워할 때, 잡혀가는 장길산을 보며 “크게 될 사람인데 안타깝다”라며 그의 영웅성을 칭송할 때. 그래서 ‘장길산’은 연출자인 장형일 PD의 전작 SBS ‘야인시대’의 조선시대 버전을 보는 것 같다.

김두한은 장길산으로, 일본인들은 탐관오리로, 조폭은 의적으로 바뀌었을 뿐, 특출난 영웅이 우매하고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구원하며, 그들은 ‘싸움 잘하는’ 영웅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물론 역사적 사실까지 바꿔가며 일제 강점기의 ‘조폭’을 칭송했던 것보다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는 ‘장길산’의 이야기가 훨씬 타당하다는 것을 안다. 드라마가 너무 ‘의미’만 쫓아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장길산’ 아닌가. 바로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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