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통계청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습니다. 산업활동동향의 몇몇 수치가 발표 전날 오후 늦게 증권가에 유출된 것이죠. 통계청은 이 일로 청와대와 재정경제부에 미리 알려주던 관행까지 없앴습니다. 만일 장중에 유출될 경우 몇 개 숫자 덕에 부당하게 돈버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5월 산업활동동향이 지난달 29일 발표됐습니다. 언론들은 ‘소비자 지갑 다시 닫아’ ‘건설 수주 급감’ ‘회복경기, 다시 꺽이나’ 등의 제목으로 크게 다루었습니다. 도대체 산업활동동향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하루 먼저 안다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떤 통계길래 국민들 씀씀이, 건설사의 어려움, 경기 전망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한달치 실물경제 종합성적표
경제 분야에서는 숫자 한 개가 책 한 권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A4 한 장짜리 매월 산업활동동향 요약표에는 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농축돼 있습니다.
물론 나라 경제는 성장률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만, 이건 2~3개월이 지나야 통계가 나옵니다. 반면 산업활동동향은 한 달이 채 안돼 집계가 됩니다. ‘경제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산업활동동향)와 ‘이렇게 돌아갔구나’(성장률)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산업활동동향에는 유달리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생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만 5개, 투자지표도 4개가 됩니다. ‘생산’ 지표로는 표본으로 선정된 수백여 개의 품목들이 ▲얼마나 만들어 졌는지(산업생산) ▲공장에서 유통단계로 얼마나 넘어갔는지(출하) ▲출하가 안되고 남은 물건은 얼마인지(재고) ▲2,400여개 표본 사업체의 생산능력 대비 생산실적은 얼마인지(평균가동률) 등이 있습니다.
‘소비’ 지표로는 전국 5,000여개 백화점ㆍ편의점ㆍ소매점포 등의 판매동향을 보여주는 ‘도소매판매’와 내수용 소비재가 얼마나 유통업체로 넘어갔는지를 나타내는 ‘내수용소비재출하’ 등이 사용됩니다.
‘투자’ 지표로는 ▲설비투자에 사용되는 63개 품목의 순공급량(설비투자추계) ▲기업이 기계제작업체에 발주한 기계류 규모(국내기계수주) 등의 통계가 있습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얼마나 수주했는지(국내건설수주), 또 실제 얼마나 건설했는지(국내건설기성)도 투자지표로 잡힙니다.
산업활동동향은 이렇게 많은 지표들을 근거로 현재의 경기를 추론하는 것입니다. 이때 제시되는 통계치는 작년 대비 증감율이기 때문에 부호(플러스냐 마이너스냐)와 증감폭 등이 키포인트입니다.
5월 산업활동동향(표 참조)을 보면 수출과 내수간 양극화 심화 현상이 잘 드러납니다. 생산은 13.5%, 수출용 출하는 11.0%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도소매판매는 3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내수용 소비재 출하는 감소폭이 더 커졌습니다. 국내건설수주도 5개월째 마이너스인데, 그 폭이 더 늘었습니다.
선행지수, 동행지수 읽기
산업활동동향의 개별 지표들은 경제의 한 측면이기 때문에 전체 경기를 대표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업활동동향 발표때는 경기종합지수라는 것을 같이 발표합니다.
이중 현재의 경기동향을 알기 위해 작성된 것이 동행지수입니다. 산업생산, 도소매판매 등에다 수출입을 조합한 것이죠. 엄밀히 말해 현재의 경기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지난달 대비치(전월차)를 봐야합니다. 경제는 인구가 증가하듯 추세적으로 성장합니다.
순수하게 ‘경기’ 만 보려면 추세치를 제거한 순환변동치를 봐야하는 것이죠. 5월 경기종합지수(표 참조)를 보면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전월차가 두달 연속 마이너스입니다. 통상 6개월 연속 감소하면,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합니다.
한편 선행지수는 앞으로의 경기를 보여줍니다. 고용, 설비투자추계, 주가 등으로 만드는데, 고용이 늘면 근로자 소득이 늘어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선행지수도 지수 자체보다는 지수의 전년 동월비가 지난달 보다 얼마나 증감했느냐를 기준으로 봅니다. 선행지수는 6~9개월후의 경기를 예측해 주는데, 현재와 반대방향으로 5개월정도 지속하면 이 시점을 경기 전환 시점으로 판단합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앗! 통계의 함정
산업활동동향을 읽을 때는 전후좌우를 잘 살펴야 합니다. 대부분 수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얼마나 늘고 줄었느냐, 즉 전년 동월비로 제시됩니다. 추석 연휴가 있는 9월 경기를 분석하면서 빙과류가 많이 팔린 8월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죠.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명절 착시, 파업 착시, 기술적반등 반도체 착시 등이 대표적입니다.
추석 연휴가 지난해에는 9월, 올해는 10월에 있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올 9월의 지표는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보다 조업일수가 3~4일 더 많기 때문이죠. 대형 사업장의 장기 파업이 있었다면 이듬해 지표가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 파업은 지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생산 지표는 수백여 개 품목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지만, 핵심 품목에 대해서는 지표 작성시 더 높은 가중치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사스(SARS)와 같은 외부충격 때문에 지표가 뚝 떨어졌을 때도 역시 이듬해 지표는 기술적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정 품목이 워낙 잘 나가서, 전체 지표가 좋아지는 것도 산업활동동향의 고질적인 착시현상입니다. 올 5월 산업활동동향에서도 산업생산은 13.5%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빼면 5.7%에 불과합니다.
산업활동동향중 어떤 한가지 지표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산업활동동향은 경제 각 부문의 수많은 지표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이기 때문이죠. 또 지표의 한 두달치 실적을 확대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심각한 외부충격이 아닌 한 1~2개월 만에 크게 변화하는 경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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