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레하겔 감독이 이끄는 그리스가 개최국 포르투갈을 두 번 울리고 ‘우승신화’에 마침표를 찍었다.그리스는 5일(한국시각) 포르투갈 리스본의 루즈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2회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결승에서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베르더 브레멘)의 결승골에 힘입어 포르투갈을 1-0으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앙리 들로네컵을 품에 안았다. 득점왕은 5골을 기록한 체코의 밀란 바로스가 차지했다.
유로2004는 이변으로 시작해서 이변으로 막을 내렸고, 유럽축구의 변방 그리스(FIFA랭킹 35위)는 유럽축구사를 다시 쓰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스의 우승은 76년 체코와 92년 덴마크의 우승을 능가하는 대회 사상 최고의 이변으로 꼽힌다. 우승확률 100대1의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는 덴마크의 라우드롭 형제나 체코의 안토닌 파네카 같은 빅스타 없이 무명선수들만으로 우승을 이뤄내 더욱 빛났다. 독일출신의 오토 레하겔 감독은 유로 대회를 제패한 첫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됐다. 더욱이 유로80이후 두 번째 본선에 나선 그리스는 유로대회나 월드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한을 풀고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 단 한번 출전(1994년)했을 뿐인 그리스의 우승은 레하겔 감독이 추구한 수비축구의 개가였다. 포르투갈은 공격의 빈도는 많았지만 결정적인 찬스를 잡지 못했고, 그리스는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으로 맞섰다.
후반에도 포르투갈이 주도권을 잡는가 싶었지만 12분 세트플레이 한방에 무너졌다. 그리스는 앙겔로스 바시나스가 올려준 오른쪽 코너킥을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가 골지역에서 헤딩슛, 천금 같은 결승골을 잡아냈다. 마음이 급해진 포르투갈은 호나우두와, 피구가 잇달아 골문을 두드렸지만 골문을 여는데 실패했다.
그리스의 우승은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마크의 합작품. 탄탄한 수비조직력을 바탕으로 송곳 같은 역습을 펼쳐 보는 재미는 떨어지지만 매 경기 100%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스축구는 수비 시 페널티지역 안에 8, 9명의 수비수가 집중되는 등 60~70년대 이탈리아팀을 연상케 한다. 스토퍼를 두는 맨투맨 수비에 스위퍼 한 명을 더 두는 극단적인 수비 위주의 5-4-1 전형을 채택해 구식축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역습에 나설때는 3-4-3으로 빠르게 전환한다.
본선에서도 4백과 5백을 혼용하며 강팀들의 예봉을 봉쇄했고, 때로는 중앙 수비수를 3명 배치하는 변칙전술과 공격수의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통해 그리스식 토털사커를 선보였다.
델라스를 축으로 하는 수비진은 경험과 신체조건을 주무기로 예선에서 4실점했고, 본선에서도 4골(6경기)만 허용했다. 상대 공격수들은 매번 그리스의 압박 수비에 발목이 묶였고, 제풀에 지친 상대는 그리스의 기습 한방에 번번이 녹다운됐다.
특히 8강전이후에는 프랑스, 체코, 포르투갈을 상대하면서 358분간 무실점 행진을 벌였다. 앙리, 트레제게, 바로스, 콜러, 피구, 파울레타 등 A매치에서 168골을 합작한 세계적인 골게터들도 마술에 걸린 그리스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게다가 90분간 쉬지 않고 뛰는 철인체력과 상대의 약점을 절대 놓치지 않는 레하겔 감독의 용병술 등이 맞물려 유로2004 신화를 완성했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결승골 주인공 하리스테아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았기에 우승은 더욱 달콤했다.
포르투갈과의 유로 2004결승서 헤딩 결승골을 넣어 1,000만 그리스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안겔로스 하리스테아스(24ㆍ베르더 브레멘)는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교체 멤버로 뛰었던 후보였다.
이날 골로 일약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떠올랐지만 대회 전까지만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지난 2002년 그리스 아리스 살로니카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했지만 팀 적응에 실패, 교체 멤버로 지난 시즌 소속팀의 리그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성적표는 21경기 출전에 단 4골.
그렇지만 이번 유로2004를 통해 ‘영웅신화’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191㎝의 큰 키에서 내려꽂는 헤딩이 위협적인 그는 이번 대회서 3골을 뽑았다. 모두 팀의 승리에 관련된 만점짜리 골이었다.
지난 달 17일 스페인전에서 오른발 동점골을 시작으로 프랑스와의 8강전 헤딩 결승골에 이어 이날 또 다시 천금의 결승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의 이력이나 플레이 스타일은 96년 유럽선수권서 독일의 우승 당시 헤딩 결승골을 넣어 무명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비어호프를 연상시킨다.
한편 하리스테아스는 2004 아테네올림픽 축구 본선에서 한국의 첫 상대인 그리스 대표팀의 와일드카드 1순위로 꼽히고 있어 사상 첫 메달 도전에 나서는 한국 올림픽팀으로선 특별히 경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킹 오토' 레하겔, 첫 외국인 우승감독 영예
오토 레하겔(65)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킹오토’로 통한다. 80년 뒤셀도르프의 독일컵 우승을 이끈 뒤 베르더 브레멘 등 클럽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는 등 국내에선 우승제조기로 불렸다. 하지만 국제적인 명성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8월 그리스대표팀을 맡은 지 23개월 만에 유로대회 사상 첫 외국인 우승감독에 올라 늦은 나이에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다. 레하겔 감독은 한물 간 옛날식 수비축구를 한다는 일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축구가 현대축구’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자신의 축구철학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그리스의 깜짝 우승은 레하겔 감독의 카리스마와 철저한 팀워크로 무장한 스파르타식 훈련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에겐 시련의 세월도 있었다. 1996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 UEFA(유럽축구연맹)컵 결승 하루 전 구단으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팀은 감독 없이 팀은 우승컵을 안았고 독일 언론은 상처투성이의 그에 대해 “이제 전성기를 지난 것 같다”며 동정했다. 또 그가 그리스 대표팀 감독을 맡을 당시 “은퇴에 앞서 마지막 보직이 될 것”이라며 비웃었다. 더욱이 그는 핀란드와의 데뷔전에서 1-5로 대패했다.
이후 레하겔 감독은 체력을 갖추지 못한 스타들은 과감히 탈락시켜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월드컵보다도 힘들다는 유로대회 우승으로 비난을 한 순간에 잠재웠다.
그는 훈련 때는 90분간 쉬지 않고 뛸 수 없는 선수는 떠나라고 말하는 매정한 조련사였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다정다감한 면을 보이는 강온정책으로 선수들을 다잡았다.
특히 그의 성공신화는 빅리그에서는 교체멤버 수준도 안되는 그리스의 무명 선수들을 월드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레하겔 감독은 “이 순간 축구가 그리스 국민들을 단결시켰다”며 “정치도 못해낸 일을 우리가 해냈다”고 포효했다. 개막 전 “포르투갈에 참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우승하러 간다”는 약속을 지킨 그는 로타르 마테우스와 루디 푈러 전 감독까지 나서 독일대표팀을 맡아달라고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유럽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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