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본을 다시 본다]<24>5부 다시 보는 한일관계②한일교류 지평확대-시민과 지자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본을 다시 본다]<24>5부 다시 보는 한일관계②한일교류 지평확대-시민과 지자체

입력
2004.07.06 00:00
0 0

세계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국경의 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개방과 함께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므로 각종 정보와 문화상품의 유통이 촉진되게 마련이다. 정보기술의 획기적 혁신은 국가간의 거리를 좁히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세계화와 함께 중앙정부가 대외관계를 독점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지방자치단체가 국제교류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중앙정부의 외교는 군사동맹, 안보, 경제협력과 같은 딱딱하고 거창한 주제를 다룰 수 밖에 없다. 국가이익이나 안보와 같은 명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시민과 지자체가 주도하는 국제교류는 생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나 문화를 주제로 삼게 된다. 즉 생활인의 감각으로 국제교류를 추진하므로 평범한 사람끼리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두 나라 사이에는 폭발성 쟁점들이 수두룩하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파동을 비롯해 역사왜곡, 군대위안부, 재일동포 차별 등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일수록 공식적인 외교 관계에서는 미리 정해진 원칙론 말고는 양측 모두 할 말이 없게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민 사이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와 공동 행동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실질적으로 행정서비스를 전달하는 주체인 지자체 수준의 교류는 시민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역사 교과서 파동을 돌이켜보면 한국이 일본의 시민사회에 친구를 만들어 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명분론만 내세우며 한국이나 중국의 항의를 얼버무리고 있었다. 침략전쟁과 만행을 은폐한 교과서가 출판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수업 교재로 채택한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왜곡된 교과서의 사용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주체는 일본의 시민운동 단체들이었다. 중고교를 관리하는 지방 교육위원회의 입장에서는 외교관계에서 발생하는 마찰보다는 직접 찾아오는 시민의 항의가 껄끄러운 법이다. 군대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의 시민운동은 숨겨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을 끈기 있게 해 오고 있다. 물론 직접 피해를 입은 남북한의 당사자들이 제일 큰 고통을 받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10여년이 넘게 매주 수요 항의집회를 개최함으로써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본의 시민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커다란 기여를 했다. 암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의 지식인 종교인 사회운동가 시민들은 한국 군사정권의 폭압상을 외부에 알리고, 힘겹게 해외에서 버티고 있는 민주화운동 지원 단체를 헌신적으로 도와 주었다. 이러한 지원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인이 일본의 웬만한 노동운동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 관계자를 만나면 첫 인사는 의례적으로 자기도 김대중 구출을 위한 서명 운동에 참가했다는 말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될 때도 일본의 선례와 경험은 큰 참고가 됐다.

1987년 이후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돼 저임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상실되자 일부 악질 일본 기업들은 임금을 체불한 채 문을 닫고 달아나 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노조가 일본까지 원정을 가 운동을 벌여 임금을 받아낸 스미다전기 사건과 스외니 사건이었다. 만일 일본의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의 도움이 없었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양국의 지자체 사이의 교류는 한국이 선발 주자인 일본의 행정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가 되며, 이를 통해 시민 교류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경기도의 부천시가 일본의 가와사키(川崎)시와 10여년 이상 유지하고 있는 협력관계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지자체 수준에서 시작한 교류가 상인, 예술인 등 일반 시민의 상호 방문을 통한 교류로 확대되었으며, 국제업무 담당 공무원을 서로 파견해 교환 근무를 하는 정도가 됐다. 이 과정에서 양국 지역사회의 여론 주도층과 공무원들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2003년 8월 15일에는 재일동포 1세들이 가와사키시 공무원들의 안내로 부천을 방문, 광복절 기념 문화행사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 재일동포의 생활상을 담은 일본 작가의 사진전도 부천 시의회 건물에서 열렸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보수화의 역풍은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하에서는 일본이 엄연하게 동맹국이라는 딜레마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군사적 행동 반경이 커지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시민과 지자체는 평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우익의 역공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의 시민운동은 오히려 실질적인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은 새로운 국제적 책임과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협찬: SK 주식회사

이종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50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 일본 도쿄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저서 일본의 지방자치와 노동행정(한국노동연구원) 등

■한국 77개 지자체, 日과 교류 "이웃사촌"

한일 양국의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가 본격화한 것은 1995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또 98년 김대중정부 당시 양국이 합의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한국의 일본문화개방,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등에 의해 친선 화해 분위기가 획기적으로 조성되면서 더욱 급물살을 탔다.

2004년 1월 현재 일본과 교류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치단체는 시도광역 14개와 기초 63개 등 모두 77개 단체에 이른다. 99년 한일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민간차원의 협의체인 '한일문화교류회의'(위원장 김용운)가 지난해 작성한 교류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교류는 문화교류(41.3%) 인적교류(32.6%) 청소년교류(15.2%)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양국 자치단체의 교류에 대한 의욕, 특히 일본측의 의욕이 과거 어느때 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돼 향후 전망도 매우 밝은 편이다.

일본 미야자키(宮崎)현의 경우 지난해 서울지역과 중고등학생의 상호 방문 및 홈스테이, 스포츠·음악 지도자의 의견교환회, 교사·학부모의 상호 방문, 한일 국제심포지움, 무역상담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하며 서로간의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처럼 중앙정부 주도에서 탈피한 자치단체의 교류 확대 양상은 양국관계를 한층 두텁게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교류는 한계도 노출하고 있다. 이제는 자치단체 주도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민간 주도로 발전할때가 됐지만 관-관교류의 양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자치단체간에 '교류를 위한 교류'는 진행되고 있지만 진정한 '윈-윈을 위한 교류'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좀더 성숙한 양국간의 교류를 위해 자치단체들이 앞장서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된 민간교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