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지로부터 어떤 관객이 제일 싫으냐는 질문을 받은 난 그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공연을 보러 와 주시는 게 어딘데 감히 싫다 좋다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쇼핑에 열 올리고 사치관광에 몰두하면서도 문화생활을 위해서는 단 몇 푼도 쓸 수 없다는 사람들, 신문 문화면 한 번 읽어보지 않는 사람들, 공연장에 가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어이없어 하는 남자들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아직까지 문화라는 단어를 베짱이들의 유희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작고 더운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들을 나는 업어드리고 싶기 때문이다.몇년 전 동대문 도매시장이 수출역군이 되던 시절에 어떤 주간지 기사에서는 한국의 기(氣)가 거기로 몰린다고 법석을 떨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정부에서 그 건너편에 대규모 소매시장 건설을 허락해 줬다. 한 순간에 수출역군들은 쓰러지고 저가의류사업은 중국인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한 순간이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는 문화산업밖에 없다고.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노동력조차도 넘어가는 나라에서 결국 남은 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예술성과 감수성이라고.
문화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쥐고 있는 최상의 승부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높으신 분들은 그 단어의 뜻조차 모르시는 듯하다. 항상 그래왔듯이 우리나라 문화산업은 스스로 발전할 것이다. 뛰어난 몇몇 천재들에 의해서, 국민들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서. 가난하지만 소신껏 작업을 하고 있는 이 땅의 힘든 예술가들에 의해서. 그날이 오게 된다면 그 모든 영광을 가져가야 할 분들이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신 한 분 한 분의 관객들이시기 때문에 난 다시 한 번 그분들을 업어드리고 싶다.
/이지나 연극연출가
※필진이 바뀝니다
오늘부터 '천자춘추'필진이 바뀝니다. 이지나(40), 김민기(40·두앤비컨텐츠 대표), 박영민(39·추계예술대 교수), 김경형(43·영화감독), 이선철(38·폴리미디어 대표), 임성윤(38·원불교 안강교당 교무), 홍경수(36·KBS PD), 신정아(32·성곡미술관 큐레이터)씨 8명이 번갈아가며 집필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