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미국사회를 성공했다고 찬양해 마지않는 순간, 그 공동체가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도 미국 내부에서 나온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한 김성호(38)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막스 베버의 시민사회 정치학(Max Weber's Politics of Civil Society)'이라는 정치사상서를 냈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이 출판부에서 국내 정치학자가 책을 낸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베버(1864∼1920)의 대표 저서로 올해 발간 100년을 맞는 '신교(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담긴 정치사상을 재해석한 것이다. 출간을 전후해 수전 루돌프 미국 정치학회장 등으로부터 "베버의 정치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고 적잖이 호평 받았다.
책에서 '미국 공동체의 퇴락'을 거론하며 김 교수가 주목하는 사람은 로버트 퍼트남 하버드대 교수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퍼트남의 저작 '혼자 하는 볼링(Bowling Alone)'은 가족, 이웃, 사회집단 등 미국 공동체의 유대가 40년 동안 서서히 끊어졌으며 그래서 시민사회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만연한 개인주의 풍토에 막연히 불안했던 미국인들이 '감동'할 만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부활을, 공동체의 재건을 바랐으면서도 퍼트남은 공동체의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 착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연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KKK단' 만큼 자발성이 강한 커뮤니티가 어디 있습니까? 로스앤젤레스에는 부자들이 모여 살면서 주위에 담을 둘러치고 무장 경호원까지 둡니다. 이것을 공익을 위한 올바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좋은 공동체의 기준을 정하는 데는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베버는 시민사회론을 제기하며 근현대사회의 관료화나 개인이 톱니바퀴의 나사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공동체의 '질'은 시민이 공적인 아젠다에 적극 참여해 경쟁하는 가운데 만들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양과 질에서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중앙집중적이고 거대 담론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반상회 정도의 작은 공동체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거기에 적극 참여해 공익을 고민하고 올바른 시민의 모습을 배워가는 움직임이 더 늘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실천적인 결론이 아니다. 체조선수가 뜀틀을 딛고 날아 오를 때 최대 목표로 삼는 것은 착지가 아니라 고난이의 공중자세 이듯, 그는 베버의 정치사상을 학문 전체를 보며 치밀하면서도 공평무사하게 해석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 작업은 반 세기 동안 베버 정치사상의 '주류 독법(讀法)'으로 자리잡은 독일 학자 볼프강 몸젠식 해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몸젠은 2차 대전 후 서독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면서 베버의 사상을 편하게 갖다 쓴 데 반발, 베버 사상의 국가중심주의와 권위주의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런 측면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지만 종교이론이나 인식론 등 학문적인 작업을 두루 살필 경우 베버 사상은 다원적인 시민사회와 자발적인 시민참여라는 자유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UC리버사이드, 윌리엄스대 교수를 지낸 그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막스 베버 학술지인 계간 '막스 베버 연구' 편집위원에 최근 선출됐다. 유네스코가 이르면 올해 말 '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여는 국제학술회의의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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