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코미디로 끝난 탄핵관련 방송 공정성 심의를 계기로 방송위원회 개혁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탄핵방송 전체는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각하(却下) 결정의 법리적 타당성을 떠나, 이번 사태는 방송정책 총괄기구라는 위상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방송위의 무능과 무소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심의제도를 비롯한 업무 전반의 재정비는 물론, 정치권의 '나눠먹기'로 이뤄진 방송위 구성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송위의 총체적 난맥상
이번 사태는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가 3월24일 "탄핵방송이 전체적으로 공정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당시 발표문) 관련 학회에 분석을 의뢰하되, 개별 사안은 계속 심의한다고 결정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방송 전체와 개별 프로그램의 분리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과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상임위원회는 면밀한 검토 없이 바로 한국언론학회에 분석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방송위 내에서 누구도 법적인 하자를 지적하지 않았다.
더구나 심의위는 3월31일 "탄핵방송 전반에 대해 검토해"(발표문) 신중하게 보도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방송위는 1일 "계류 중인 사안 외 개별 프로그램은 이미 심의를 거친 만큼 재심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심의위나 방송위는 심의대상이 아니거나(방송 전체), 심의가 끝난(개별) 사안을 놓고 씨름 하는 '촌극'을 벌인 셈이다.
사실 심의제도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심의위 구성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심의 안건 상정도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왔다"면서 "심의위원의 전문성 강화 등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무용지물'이 됐지만, 언론학회에 분석을 의뢰하는 과정에서도 방송위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다. 방송위는 "학회에 기초자료 분석만 요구했는데, '결론'까지 내려 파문이 확대됐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의뢰 내용을 명확히 적시하지 않은 데 대해 책임이 있는 일부 상임위원들은 1일 전체회의에서 서로를 헐뜯고 사무처 직원들을 다그치는 추태를 보였다.
방송위 구성 방식 개혁해야
방송위의 총체적 난맥상은 구성 방식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방송위원 9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이중 6명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 및 문화관광위와 논의해 추천하도록 돼있다. 이에 따라 현 2기 방송위원은 대통령 직접 임명 3명, 구성 당시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 추천 3명, 민주당 추천 2명, 자민련 추천 1명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정치권의 '나눠먹기'가 되다 보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방송위가 독립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탄핵방송 심의 파문 역시 방송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에 좌지우지되면서 결국 외부 학회에 판단을 맡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여야간 정치적 균형도 의미는 있지만, 방송위원이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려면 정당 추천 인사를 한차례 걸러주는 검증 절차를 마련하는 등 구성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