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의 교수 임용 청탁 의혹이 관련자들의 엇갈린 주장 속에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현재까지 오지철 문광부 차관이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를 만나 모종의 청탁을 한 것까지는 사실로 확인됐으나, 정 장관의 개입 여부와 이들 사이에 오간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진실 공방이 치열하다.정 장관 개입 여부
정 교수는 "지난달 18일 오 차관을 만났을 때 (교수임용 청탁을 한) 김모씨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까, 장관으로 내정된 정 의원이 김씨의 교수 임용 건과 관련해 문광부 내에 성대 정 교수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씨도 정 의원을 통해 부탁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혀 정 의원의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오 차관과 김씨는 사건이 불거진 후 한결같이 정 장관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발을 뺐다. 오 차관은 "김씨를 추천하면서 정 의원이 김씨 남편과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정 의원도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란 정도만 언급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정 교수가 여러 곳에 부탁을 했느냐고 묻길래 주위에서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 장관은 "오 차관을 비롯해 누구와도 김씨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면 오 차관과 김씨 사이에 얘기가 오갔고, 오 차관이 정 장관과 김씨 남편의 관계를 의식해 자진해서 과잉충성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 차관이 일개 교수 임용을 위해 직접 정 교수를 만나 부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과연 정 장관의 부탁 없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청탁내용은 무엇이었나
정 교수와 오 차관의 진술은 청탁내용에서도 엇갈린다. 정 교수는 17일 오전 오 차관이 전화로 교수 채용에 지원한 김씨를 잘 봐달라고 얘기했고, 다음날 직접 만나서도 김씨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 차관은 김씨 추천은 교수임용 청탁이 아니라 시범강의가 예정돼 있는데 잘 봐달라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오 차관에게 자신의 교수임용과 관련한 부탁을 했다고 시인했다. 종합하면 시범 강의가 교수 임용을 위한 절차라는 점에서 오 차관의 해명은 궁색해 보인다.
정 장관과 오 차관, 서씨 관계
정 장관은 "오 차관과 최근 수개월 동안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교수에 따르면 오 차관은 "장관에 내정된 정 의원이 문화부에 초임이라 업무파악을 할 때까지 같이 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 장관은 장관 임명 전에 이미 오 차관과 연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씨 남편 서씨가 10년간 정 장관과 연락이 없었다고 한 부분도 김씨가 정 장관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는 정 교수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석연찮다. 서씨 말이 사실이라면 김씨가 오 차관에게 청탁하면서 남편과 정 장관의 친분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정진수교수 일문일답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의 인사청탁 의혹을 제기한 성균관대 정진수(60) 교수는 1일 "정황상 김모씨 임용 청탁에 정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인사청탁 진정 내용을 공개한 이유는.
"장관도 아닌 내정자가 현직 차관을 시켜 인사 청탁을 했다면 중대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신문고를 통해 청와대에 알렸고 진정내용이 사정비서관실에 이첩 됐는데도 아무 조치가 없었던 것은 심각한 문제다."
―오지철 문화부 차관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나.
"6월17일 오전8시쯤 오 차관이 집으로 전화해 김씨가 성대 교수직에 지원하는데 잘 봐달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오 차관은 김씨의 인사청탁을 얘기하면서 '후임장관으로 내정된 정 의원도 김씨가 지원한 사실을 알고 있는데 문화부 내에 정 교수를 잘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더라'고 했다. 오 차관이 정 의원 지시에 따라 전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씨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누구에게 부탁했냐고 물으니 '정 의원 통해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의원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남편을 통해 알고 있다. 남편은 서프라이즈 대표인 서영석'이라고 했다."
―당사자들은 부인하면서 민·형사 소송을 생각하고 있는데.
"대화 내용은 녹음하지 않았으나 고소를 한다고 해도 내가 말하는 내용은 변함없다."
―인사청탁이 김씨 평가에 영향을 끼쳤나.
"당연하다. 좋지않게 점수를 줬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鄭문화 "완벽한 명예훼손이자 픽션"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1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며 인사청탁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치웹진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대표도 부인 김모씨가 오지철 문화부차관을 만나 자신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은 있으나, 자신이 직접 정 장관이나 오 차관에게 청탁한 사실은 없다고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정 장관측은 이날 아침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 '사실 무근'이라고 펄쩍 뛴 데 이어, 청와대에서 장관 임명장을 받고 오후에 문화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기자회견을 자청, "오늘 아침 신문보도는 완벽한 명예훼손이자 픽션"이라고 반박했다. 서 대표와는 10년 전 정치부 기자 시절 만난 적이 있지만 근래 2년 동안 대화를 나눠본 일조차 없고 서씨 부인이나 성균관대 정진수 교수가 누군지도 모르며, 오 차관과도 몇 달 동안 통화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 대표도 부인의 부탁은 있었으나 자신과 장관이 개입된 압력성 청탁은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서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성균관대 교수 임용 공고가 나자 집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운동을 한다며 여기저기 알아봤던 모양"이라며 "올 초 문화부 산하 자문기획단 일로 안면을 튼 오 차관이 정 교수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연락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집사람이 오 차관에게 부탁했다 길래, 내 경험상 장·차관이 들어줄 리 없다고 말해줬다"며 "부탁 당시 집 사람이 내 이름이나 정 장관 이름을 팔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장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초반 같은 평민당 출입기자로 정 장관과 안면이 있는 정도 뿐이며 오 차관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이날 또 서프라이즈에 비난 글이 폭주하자 세 차례에 걸쳐 해명글을 올리며 진화에도 부심했다. 서 대표는 처음 올린 글에서 "청탁을 하려면 당시 장관인 이창동 전 장관에게 하지, 뭣하러 10년간 만난 적도 없는 정동채 의원에게 하겠느냐"며 "세계일보와 정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가 두번째 글에서는 부인의 부탁 사실만은 인정했고, 세번째 글에서는 "법률적으로 큰 잘못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며 네티즌들에게 사과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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