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그 독특한 특성 때문에 TV 광고를 할 수는 있지만 규제가 엄격하다.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의 술은 아예 TV 광고를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소주와 위스키는 TV를 제외한 신문광고나 옥외광고, 극장광고로만 볼 수 있다.또 17도 이하의 술이라도 광고는 밤 10시 이후에나 할 수가 있다. 유난히 심야 시간대에 맥주광고가 많이 보이는 것이 이런 이유. 하지만 라디오에서의 술 광고는 TV와는 반대로 낮 시간대에만 할 수 있다. 심야에 청소년들이 라디오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술 마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곤란하다. 방송심의 규정에 따르면 ‘과다음주 조장’으로 국민 건강을 해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델이 ‘카~’하는 탄성을 지르며 물방울이 송송 맺혀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 들이키는 맥주 CF의 멋진 장면은 한 번 정도만 볼 수 있다.
술 광고를 방영하기가 이리 어려운데 하물며 술 광고를 촬영하는 것이 쉬울까. 촬영을 하다 보면 수많은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CF 한 편에 술 마시는 장면은 한번 정도 밖에 안 나오지만, 막상 촬영 때는 그 한 장면을 건지기 위해 모델은 계속 술을 마셔야 한다.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연기자가 취해 버릴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주 마시는 장면은 맹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맥주 광고의 경우 맥주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가 없어 대부분 진짜 맥주를 마신다. 때문에 술이 약한 모델의 경우 맥주를 마신 후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입에 머금었던 맥주를 커다란 통에 다시 뱉기도 한다.
최근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의 선후배 연기자인 김상경, 박정철, 박예진 세 사람을 모델로 백세주 광고를 촬영할 때의 일이다. 제작진은 백세주와 비슷하게 우려낸 녹차로 촬영할 것을 권했지만, 원래 술을 좋아한다는 모델 3인방은 “이렇게 좋은 경치에, 더구나 좋은 술 백세주 광고에 녹차가 말이나 되느냐”며 촬영진에게 진짜 술로 촬영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결국 갑론을박 끝에 진짜 백세주를 마시기로 결론이 났다. 경치가 기가 막힌 경기 가평의 한 계곡에서 진행된 촬영은 진짜 술을 주고 받는 모델들의 ‘열성’ 덕분에 실감나는 연기가 나왔지만, 제작진이 우려했던 대로 취기가 올라서 촬영을 잠시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이 촬영하면서 마신 술은 모두 7~8병 정도. 이 가운데 대부분은 선배 김상경이 마셨고, 가장 먼저 취한 사람은 박예진이었다.
한가지 사족. 사실 술만큼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제품도 없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술을 마실 때 그 동안 마시던 술을 고르는 경향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에 안주하면 새로운 시대의 욕구를 반영한 경쟁자들이 등장해 자리를 위협한다. 그래서 술 광고는 만들기가 어렵다.
/박정호ㆍ제일기획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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