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황금 열쇠피터 시스 글ㆍ그림, 송순섭 옮김
사계절 출판사 발행ㆍ1만2,000원
중부 유럽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천년 고도다. 고풍스런 풍광 속에 오랜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곳이다.
거기서 자란 작가 피터 시스가 쓰고 그린 ‘세 개의 황금열쇠’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빚어낸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그는 1882년 미국에 일하러 왔다가 망명, 7년 뒤 체코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딸에게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이 그림책을 지었다고 한다.
작가는 책 속 주인공이 되어 프라하를 소개하고 있다.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프라하의 거리와 명소를 찾아가는 그의 발길을 따라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가 펼쳐진다. 책의 도입부, 작가는 세 개의 자물쇠로 굳게 잠긴 고향집 문 앞에 서 있다. 마법의 눈을 지닌 고양이가 나타나 작가를 인도한다.
12세기에 세워진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도서관, 프라하의 명물인 보얀 정원과 오를로이 시계탑을 차례로 거치는 동안, 그때마다 체코의 옛 이야기가 적힌 두루마리와 함께 황금열쇠를 받는다. 마침내 세 개의 황금열쇠를 모두 손에 넣고 옛집의 문을 열었을 때, 그를 반기는 것은 저녁식탁을 차려놓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다.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행복하다. 화가의 지혜와 솜씨를 보여주는 멋진 그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긴 글이 없어도 그 자체로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그림을 찬찬히 살피며 얼개를 맞춰보는 재미가 그에 못지않다. 이 책이 그렇다.
복잡한 선으로 그린 환상적인 그림은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중세의 그림자가 깃든 상징적 이미지들이 그림 곳곳에 박혀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프라하 거리를 내려다 보며 용과 물고기가 날아가고, 유명한 카렐 다리 위 하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는 깃털로 만든 노를 젓는 고양이 사공들이 타고 있다.
보얀 정원에서 황금열쇠를 건네주는 사람은 16세기 체코 황제 루돌프 2세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아르침볼도가 꽃과 과일로 표현한 기묘한 초상화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체코와 프라하,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고 보면 암호처럼 보이지만, 독서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 당장 프라하에 관한 여행안내서라도 펼쳐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작가는 서문에서 딸에게 말한다. “언젠가 네가 프라하에 가서 열쇠를 찾거든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프라하의 비밀을 풀어 보려무나. 시간이 흐를수록 프라하는 네게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이 책은 그렇게 느긋하게 읽어야 한다. 여러 번 읽을수록 더욱 많은 비밀을 말해주는 책, 그림책이 상상력의 엔진이 될 수 있음을 실감케 하는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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