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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나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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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나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할아버지

입력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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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마당가에 여러 그루의 자두나무가 서 있다. 몇 나무는 빨갛게 익고, 몇 나무는 노랗게 익는다. 크기도 아이들 주먹만 하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있던 나무들이라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모두 할아버지가 심으신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오랍들(동네 공유 들) 빈터마다 앵두, 매실, 살구, 자두, 복숭아, 포도, 사과, 호도, 밤, 감, 모과, 석류나무를 심었다. 지금 열거한 것은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의 열매가 익는 순서를 따라 적은 것이다. 복숭아나무도 천도복숭아와 털복숭아나무를 구분하여 두 종류를 심었다.이 가운데 복숭아, 포도, 사과, 석류나무는 늙어서 죽고 다른 나무들은 아직도 왕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자두는 지금부터 부쩍 과육을 늘리기 시작해 한 달 후쯤 절정을 보인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이틀에 한번씩 아버지 어머니께 전화를 해, 마당가 자두의 안부를 묻는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시골에 살며 어른이 조금만 부지런하면 그 집 아이들이 설령 배는 곯더라도 남의 집 과일 부러움은 하지 않고 산다고. 엊그제가 할아버지의 24주기였다. 그렇지만 지금도 할아버지는 나무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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