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1일 지상파TV 3사의 탄핵방송 공정성 논란에 대해 각하를 결정함에 따라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이 사안은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방송위는 공정 또는 불공정 판단을 내릴 경우, 뒤따를 정치적 논란은 피했지만 애당초 심의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을 붙들고 3개월여를 씨름 한 셈이어서 국가기관으로서 위상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각하 결정 과정
그동안 탄핵방송을 둘러싼 논란은 공정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한국언론학회가 방송위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분석보고서에 대한 방송사와 시민단체 등의 비판도 분석 틀의 타당성과 연구자의 정치적 편향성 등을 지적하는데 모아졌다.
그러나 조용환(변호사) 방송위원이 지난달 30일 전체회의에서 "프로그램을 특정하지 않은 포괄적 심의는 위법"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논란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당초 일부 방송위원들은 '주제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수 회의 방송 프로그램 전체를 대상으로 심의할 수 있다'는 방송심의규정 63조를 들어, 심의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때문에 방송위는 30일에 이어 1일까지 이틀간 10시간여에 걸쳐 마라톤 회의를 열었고, 이 과정에서 인신공격성 발언과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위원들은 표결 없이 '전원합의'로 각하 결정을 내놓았다. 당초 강하게 반대했던 위원들도 공정성 판단에 따른 정치적 논란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음을 읽을 수 있다.
문제점은 없나
심의관련법과 규정을 엄격히 해석한 각하 결정은 법률적으로 일리가 있는 판단으로 보인다.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도 "원래 심의는 개별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심의규정 63조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묶어 심의할 경우에도 제재는 개별 프로그램에 대해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위가 여지껏 이런 기초적인 법리 해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심의를 끌어온 것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또 방송위가 이런 잘못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반성을 하지 않은 채 책임을 슬쩍 떠넘기려 한 것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성유보 위원은 결정 내용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애당초 한국언론학회에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기초 데이터 분석을 의뢰한 것인데, 언론학회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붙여 보내고 이를 언론이 확대 보도함으로써 파문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방송위가 심의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는 점도 문제다. 당초 보도교양1심의위원회는 "방송위가 나서 공론의 장을 마련할 것"을 건의했으나, 방송위는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 언론학회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한 교수는 "보고서를 채택하느냐 마느냐, 각하 결정을 하느냐 마느냐는 방송위 고유의 권한이지만, 논란의 핵심이었던 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결국 곁가지로 밀려나 버린 셈이어서 아쉽다"면서 "이번 결정이 방송이 공정했다고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닌 만큼 방송계 종사자들은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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