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랍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달 21일 잘 알려진 논평가가 한 웹사이트에 올린 파병 반대 주장이 대통령에게 무례한 언사를 써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글을 격렬히 비난한 사람들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 (설득된 것이 아니라) 매혹된 세칭 '노빠'들로 보였다. 그러나 비난자들은 그 글의 '발칙함'을 물고 늘어졌을 뿐, 파병 문제에서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이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이나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을 비롯한 대미 종속적 우익 세력과 다를 바 없다는 내용적 핵심을 반박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들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파병 문제만이 아니다. 노 정권은 출범 이래 지속적인 퇴행을 통해 한나라당과의 차이를 하나하나 지워냈다. 그것을 잘 지적한 것이 같은 날 경향신문에 실린 송영승 편집국 부국장의 칼럼 '진보정권이라는 풍문'이다. 송 부국장은 이 칼럼에서 노 정권의 정책이 경제와 외교·복지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보적 가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찬찬히 들춰냈다.
정작 큰 문제는 이 보수정권의 최고책임자가 국내 정치에서 진보주의 수사를 기분 내키는 대로 남용한다는 데 있다. 송 부국장은 그것을 '서글픈 아이러니'라고 가볍게 넘어갔지만, 이것은 그가 칼럼에서 지적한 노 정권의 '취약한 외교력'과도 무관치 않은 치명적 악습이다. 이런 허황한 진보 수사는 대통령의 자기기만이나 '매혹 만들기'에 대한 기여로 제 사명을 마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그 언어적 허세는 신바람 난 국내 보수신문들에 부풀려 인용되고 미국 보수언론에 재인용됨으로써, 미국 조야에 노 정권이 그야말로 (잠재적) 좌파 정권으로 비치게 만든다. 이 정부가 부시 정권에게 내줄 것 다 내주면서도 박대 받는 비밀 가운데 하나가 거기 있을 법하다.
노 정권의 우향(右向) 질주가 보수세력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공세가 멎지는 않을 것이다. 이념이나 정책보다 더 인화성 강한 정쟁 연료는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 정권은 인정해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다툼, 또 정부와 일부 신문들의 다툼이 세계관과는 무관한 패거리싸움에 지나지 않게 됐음을.
파병 결정과 김선일씨 사건에서 노 대통령은 몰라도 유 의원에게 결정적 책임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유 의원은 논란이 된 논평가의 글에서 자신이 여권 인사 가운데 표나게 거론된 것을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이 그랬듯, 반듯해 보이는 윤리 교사 노릇으로 공적 삶의 대부분을 채우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윤리적 기대지평을 너무 높여놓음으로써, 스스로 그 기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따르게 될 세간의 환멸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노 대통령과 유 의원에 대한 환멸이 견디기 힘들 때, 나는 또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환멸을 치유한다. 한 사람은 16대 총선에서 치졸한 전략으로 노무현 후보를 이긴 허태열 의원이고, 또 다른 이는 대통령 탄핵정국의 한 방송 토론에서 야비한 언사로 유 의원을 제압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다. 내 나름의 시민윤리적 센서가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두 얼굴의 도움을 받아서야, 나는 두 사람에 대한 환멸을 겨우 다독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일도 쉽지 않다. 당사자들로서는 매우 부당하게 내 처방전에 징발된 정치인들이 노 대통령이나 유 의원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내가 보기에, 부끄러움의 부재였다. 그런데 김선일씨의 참혹한 죽음이 알려진 뒤 기자들 앞에 나와 테러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얼굴에선, 그리고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의 선택'이라는 궤변으로 파병을 합리화하는 유 의원의 목소리에선 부끄러움이 읽히지 않았다. 내가 둔한 탓에 못 읽은 것이기 바란다. 인간의 어떤 무능도 부끄러움의 능력을 잃은 것만큼 부끄럽지는 않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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