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구조화된 권력형 부패를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고비처)신설을 위한 잠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안을 살펴보면 고비처가 실제로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우선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설치에 관한 법' 제정 과정에서 고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열린우리당과 고비처 신설 자체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모두 설득해야 한다. 고비처가 설치되더라도 검찰과 중복되는 수사 관할 대상을 조정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검찰의 불기소 처분 남용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고비처가 독립적 수사를 하기 위해 특검처럼 독자적 기소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잠정안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인정해 고비처의 기소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당정 협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검찰이 고비처의 기소권 행사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여당 안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대통령 직속 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고비처를 신설할 경우 독립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고비처의 독립성 확보 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고비처를 만든다면 국회나 사법부 등 대통령 견제 세력을 탄압하는 데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고비처가 '제2의 사직동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방위의 김성호 사무처장은 "부방위는 입법·사법·행정의 3부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조직인데다 고비처장을 인사청문 및 탄핵 대상으로 추가할 것이기 때문에 고비처의 중립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고비처의 수사 대상 범위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의 잠정안은 고위공직자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 자매 등 가족을 모두 포함시키기로 했다. 부방위측은 "공직자 본인의 직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만 가족들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형제 자매 등으로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가족들까지 포함시킬 경우 수사 대상은 1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조사 대상 가족을 대통령 친인척으로 국한하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고비처가 만들어질 경우 검찰과 고비처는 서로 겹치는 수사 관할 대상을 놓고 대립할 가능성도 있다. 부방위측은 "두 기관이 동일 사건 수사에 나설 경우 먼저 수사한 기관 우선, 주된 피의자 수사기관 우선 원칙 등에 따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 같은 교통 정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안은 검찰이 고비처가 수사한 사안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고비처가 재정신청을 통해 대응하도록 했다. 이 또한 두 수사기관 간의 긴장관계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검찰 "다행半 우려半"/ 기소권배제 안도속 역할충돌 걱정
정부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잠정안에 대해 검찰은 일체의 공식적 논평은 하지 않았으나 고비처 신설이 기본적으로 검찰 불신을 바닥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가는 상황에서 검찰 견제 운운하며 새로운 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비처 신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부방위 산하 고비처가 검찰보다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검의 중견 검사는 "일단 고비처에 기소권을 주지 않기로 잠정 결정한 것은 다행스런 결론이나 향후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검찰의 우려를 집단 이기주의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며 "검찰보다 제도적으로 더 우월하고 국민에게 더 혜택을 줄 것이 확실하다면 왜 반대하겠냐"고 말했다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기소권을 줄지 말지는 오히려 부차적 문제"라며 "수사에는 인력과 노하우가 필요한데 고비처가 그런 능력을 충족해서 출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과의 역할충돌 우려가 적지 않다"며 "고비처가 사법체계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혹평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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