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삼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인천 송도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감독님과 상견례하는 자리였다. 키가 크고 혈기왕성한 감독을 생각한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앞에 나타난 송도중·고교의 전규삼 농구 감독님은 70세가 다 된 분이었다.전규삼 선생님은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친손자 대하듯 가르치셨다. "농구선수는 농구에 미쳐야 한다"는 것,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철학이었다.
선생님은 송도중·고 농구 선배들이 어떻게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는지를 들려 주시면서, "잠을 잘 때도 농구골대의 림을 보고 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야 슛을 던질 때 이 림이 커보이고 많은 골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어느 초겨울,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 남아 연습을 한 뒤 농구골대 림 밑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 림이 커 보일까?' '난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뒤척이며 림을 보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즐겁게 농구를 해보자!'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생각한 그 목표는 현재의 강동희를 지탱해 준 힘이 되었고, 나의 농구인생의 철학을 결정짓게 한 사건이 되었다.
개성이 고향인 전규삼 선생님은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한평생 농구의 후학을 양성하신 진정한 농구 지도자셨다. 2003년 5월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찾아간 빈소에는 많은 농구인 제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도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는 그분의 뜻을 잇기 위한 큰 소망이 있다. '전규삼배 아마추어 농구대회'를 개최해, 그분의 참 농구사랑을 뒤돌아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스포츠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영광이 돌아간다. 승리의 영광을 선수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코칭스태프는 강한 훈련과 어려운 연습을 선수들에게 강요한다. 농구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프로농구단의 코치가 된 나도 선수들을 독려하고 훈련을 시킬 것이다.
전규삼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농구에 대한 열정과 승리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즐겁게 스스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성취감을 선수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분이 내게 전해준 농구의 참뜻을 후배에게 그대로 이어주기 위해 매진해 나갈 것이다.
강동희 LG세이커스 프로농구단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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