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 강의를 들었던 한 남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 주례를 부탁했다. 당황했다. 주례와 같은 엄한 일을 내가? 결혼식장에 자주 가는 편도 아니지만, 주례사는 그냥 흘려 듣는 편이었다. 극구 사양했다. 그 예비신랑은 단호했다. 한번은 택시로 귀가하는 길에 그가 휴대전화로 나를 설득했고, 나는 내 사정을 호소했다.그렇게 전화를 끊었을 때, 조용히 차만 몰던 기사 아저씨가 점잖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주례 부탁이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지 어떻게 난처한 일이냐"고. 아이쿠! 그 자리에서 전화를 해 주례를 수락하고 집에 와 사정 이야기를 하니 식구들이 모두 흥분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주례사를 들으러 결혼식장에 꼭 가겠노라 했지만, 집안에 갑자기 일이 생겨 그러지 못했다. 만일 그랬다면 주례사에서 식구들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22년 동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이렇게 두 아이가 생기고, 뭐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항아리 이야기를 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귀한 항아리를 함께 들고 가는 것과 같아 자칫하면 깨지니 조심하라"고. "그렇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다소곳이 듣던 신부가 놀라 쳐다보았고, 일부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초강력 접착제로 항아리를 다시 붙여도 흔적은 남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그 흔적처럼 남아 있는 생채기를 보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신부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지난 주말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 새내기 부부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주례사가 괜찮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결혼사진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을 나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이렇게 또 하나 인연의 고리가 맺어진 것이다.
/박성봉 경기대 다중매체 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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