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전남 강진을 남도 답사 1번지라고 일컫는다. 언뜻 듣기에는 동감하기 힘들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고, 특별히 이름난 관광지도 없다. 전남의 명산으로 알려진 월출산이 있지만 강진이라기 보다는 영암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남도 답사 1번리라니….
하지만 속내들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 고개가 끄떡여진다. 강진땅은 모양부터가 묘하다. 인근 해남이 툭 튀어나온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면 강진은 자궁에 비유된다.
한국예술을 세계적인 경지에 올려놓은 고려청자가 이 곳에서 탄생했다. 청자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민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옹기도 이 곳의 자랑거리.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자궁의 이미지와,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을 연계시키는 것이 괜한 억측은 아니지 싶다.
자궁은 또한 출산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강진에는 유독 먹거리가 풍부하다. 강진만과 강진평야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이 잉태되듯, 끊임없이 싱싱한 해산물과 곡식이 솟아난다. 바다이면서도 강나루처럼 잔잔한 물 역시 여성의 부드러움을 닮았다. 강진여행은 요란하고 시끌벅적하지 않다. 대신 호수에 이는 파문처럼 고요하면서도 깊이있는 인생의 의미를 반추할 수 있는 여행이다.
강진은 고려청자의 보고(寶庫)이다. 국보급 청자의 80%가 강진에서 생산됐다. 국보로 지정된 것이 14점, 보물도 6점이나 된다. 9세기~14세기까지 강진만 자락인 대구면을 중심으로 도공들의 왕성한 창작활동이 있었다.
특히 대구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용문천을 따라 400여개의 관요가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발굴된 가마터만 188개에 달하며, 100개 이상의 터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렇게 제작된 청자는 인근 마량항을 통해 한양은 물론 일본, 중국으로 반출됐다.
명백이 끊긴 도요지는 1963년 사적 68호로 지정됐고, 97년에는 ‘강진 청자자료박물관’이 세워졌다. 천년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도공의 후예들이 다시 모여 가마터에 다시 불을 지폈다.
오묘한 청자의 색채가 이 곳에서 살아나고 있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그대로 재연한다. 고려시대 관요에서 도자기를 굽던 도공이 모두 관에 속하는 공무원 신분이었던 것을 이어받아 강진군이 직접 나서 10여명의 도공을 선발했다. 전국에 수많은 도공들이 활동중이지만 공무원 신분인 도공은 이 곳이 유일하다.
7월31일부터 8월6일까지 이 일대에서는 강진청자문화제가 열린다. 고려청자의 무늬와 빛깔을 재연하려는 도공들의 작업현장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기간중에는 시중가보다 30% 이상 싼 도자기를 구입할 수 있다. 강진군 문화관광과 (061)430-3223.
청자가 부잣집 양반들의 점유물이었다면 옹기는 계층을 아우르는 전국민의 생필품이다. 강진의 흙은 점토질이 뛰어나, 숨을 잘 쉬고 단단해야 하는 옹기의 특성을 제대로 표출할 수 있었다. 강진만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마량면 옹기마을에는 50년 가까이 전통 옹기를 제작해온 인간문화재 정윤석(63)옹을 비롯한 많은 장인들의 옹기를 접할 수 있다.
언뜻 보면 강진만은 벌어진 게집게와도 닮았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걸어서 건너편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일반 갯벌과 다름없지만 자세히 보면 꿈틀댄다. 물빠진 갯벌사이로 참게들이 구멍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인기척에 놀라 사라진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게 때문에 사람이 놀랄 지경이다. 풍부한 해산물은 강진을 전국 으뜸먹거리명소로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빼어난 자연조건을 갖췄지만 서울권에서 멀어서였을까. 강진은 유배지로도 이름난 곳이었다. 하지만 유배지에 도착한 죄인들은 이내 자연에 순응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간의 강진 유배시절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저술활동을 펼쳤다. 그가 머물던 다산초당은 이제 유배지가 아니라 그가 심었던 차나무에서 재배한 차향으로 가득한 필수 답사코스로 자리잡았다.
제주도에 표류, 강진 전남병영성 인근으로 유배온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도 이 곳에서 빗살무늬 담장이라는 그들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자칫 분노와 고통속에서 살아야했을 그들이지만 슬기롭게 삶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궁 같은 강진이어서가 아닐까. 알면 알수록 더욱 빠져드는 강진의 매력, 남도답사 1번지의 비밀이 여기에 있었나 보다.
/강진=글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상다리 휘겠구만~
강진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놓는다면 여행의 매력이 반으로 줄어든다. 남도음식이 맛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강진 만큼 식도락가의 입맛을 만족시켜주는 곳도 드물다. 예부터 강진평야의 옥토에서 나는 곡물과 강진만에서 나는 해산물이 풍부했다. 여기에 고려청자를 빚어내던 주민들의 솜씨가 음식에 투영됐으니 이미 그 맛이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강진에 가면 꼭 맛봐야 할 대표음식을 소개한다.
● 백반
강진에서 먹는 백반은 이름만 그렇지 상차림은 한정식에 가깝다. 고등어조림, 도라지, 바지락젓갈, 가지, 참게장, 머위대나물, 호박전, 참게튀김, 깻잎, 겉절이 등 반찬수만 30가지에 육박한다. 방어와 비슷하나 크기가 약간 작은 되미를 멸치젓갈에 묻혀낸 되미젓, 바지락을 약간 데친 후 미나리, 양파, 오이에 식초와 고추장으로 버무린 바지락회는 이 곳이 아니고는 맛보기 힘든 별미음식이다.
강진에서 자라는 암퇘지를 잡아 구워낸 돼지고기주물럭은 달지 않고 담백해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겨울이면 여기에 오징어회, 매생이 등 계절음식이 별도로 추가된다.
4인기준 한상에 2만원. 1인 5,000원으로 이 음식을 모두 맛볼 수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삼희회관(061-434-3533), 부성회관(434-3816), 수인관(432-1027), 흥진식당(434-3031.
● 한정식
강진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한정식을 먹어야 한다. 강진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과 풍부한 먹거리가 한상 가득 딸려 나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장어, 조기, 광어, 낙지, 생선회, 새우 등 강진만 일대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에 생고기, 갈비찜 등 육류가 올라오며 젓갈류, 튀김류, 김치류, 매생이국 등 다양한 밑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홍어와 돼지고기에 묵은 김치로 어우러진 홍어삼합도 기본반찬에 속해있다. 한 상이 차려진 뒤 음식그릇이 비면 이어 화전, 죽순, 가자미찜, 대합구이, 버섯탕수육 등이 따라 나온다.
1인분에 1만5,000원~3만원까지 가격에 따라 메뉴가 조절된다.
전통가옥에서 오붓한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청자골종가집(061-433-1100)이 유명하다. 명동식당(434-2147), 해태식당(434-2486), 혜화정(432-5126) 등은 허름한 느낌이지만 맛깔난 음식을 내놓고 있어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편이다.
● 짱뚱어탕
원래 짱뚱어는 전남 순천만이 본고장이다. 11월에서 4월까지 겨울잠을 자는 짱뚱어는 지금 짝짓기 대상인 암컷을 찾아 활발한 운동을 한다. 지금 이맘때면 럭비공 튀는 펄떡이는 짱뚱어를 낚시대 옆구리에 바늘을 달아 정확하게 찍어내는 강태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잡힌 물고기를 추어탕처럼 잘게 갈거나 통째로 끓여낸 것이 짱뚱어탕이다.
콜레스테롤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에 좋으며, 소고기보다 단백질이 풍부해 강장식품으로도 유명하다. DHA가 풍부해 기억력과 사고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데 효과가 있다.
강진읍의 동해식당(061-433-1180)은 전국에서도 이름난 짱뚱어탕 전문집이다. 경력 40여년의 주인 이순임씨는 그날그날 순천만에서 직접 짱뚱어를 잡아 올리는 ‘짱뚱어박사’로 이름나 있다. 짱뚱어탕 6,000원, 짱뚱어전골 3만원(4인분), 짱뚱어구이 1만5,000원(1접시).
● 돼지숯불갈비
강진에 들르면 빼놓지 않고 가봐야할 곳 중 하나가 설성식당(061-433-1282)이다. 연탄불에 구워내는 돼지숯불갈비가 별미다. 여기에 풋고추, 바지락국, 버섯, 무, 나물, 미나리, 생선, 메추리알, 쭈꾸미 등 20여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한 상에 나오는 돼지고기는 400~500g가량으로 네 사람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돼지고기를 더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 집만의 독특한 영업방식이다.
예약을 받지 않으며, 인원수가 아니고 상차림 기준으로 계산을 한다는 것도 특징. 4인기준 1상에 2만원. 돼지고기가 모자란다고 추가주문을 할 수도 없다. 모자란 듯이 먹기 때문에 아쉬움이 커 또 다시 찾게 한다는 것이 이 집을 자주 찾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 가는길
강진은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에 이어 고속철도(KTX)까지 개통, 강진여행이 훨씬 수월해졌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서해안고속도로로 목포까지 간 뒤 2번 국도를 따라 강진까지 가면 된다. 호남고속도로 광산IC에서 13번 국도를 따라가면 강진에 도착할 수 있다. 5시간. KTX로 광주나 목포까지 간 뒤 시외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탑승하면 광주까지는 2시간30분~3시간, 목포까지는 3시간~3시간30분 가량 걸린다. 광주에서 강진까지는 1시간30분, 목포에서는 40분이면 도착한다. 광주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 목포버스터미널(061-276-0221).
● 숙박정보
고급 숙박시설은 없지만 여관과 민박은 많은 편. 주로 강진읍내와 마량항 주변에 밀집해있다. 플라워모텔(062-434-6606), 벨라지오(433-05700, 모두모텔(433-8776), 부성파크모텔(434-2081, 이상 강진읍), 금호장((433-1588), 등대장여관(434-9006), 바다모텔(432-8818, 이상 마량항). 도암면의 아미산모텔(433-1296)은 폐교를 리모델링한 이색숙소다. 교실 한칸을 쪼개 방 2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객실이 일반 모텔에 비해 넓다. 운동장에 심어진 잔디와 꽃의 어우러짐이 압권이다.
/강진=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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