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4년 전 테러 지원을 이유로 단절했던 리비아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미국의 중동 특사인 윌리엄 번스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는 28일 트리폴리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회담한 뒤 성명을 통해 "미국이 트리폴리에 연락 사무소를 공식적으로 열었으며 이로써 양국이 24년만에 직접적 관계를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리비아도 미국에 대표부를 설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비아 관영 야나 통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형제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내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위한 양국의 협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의 선언이 갖는 실질 효력은 미미하며 다소 형식적이다. 미국은 이미 두 달 전부터 트리폴리 연락사무소를 운용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식 선언이 갖는 의미는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압둘라 왕세자 암살 음모 개입설로 곤경에 처한 카다피의 정치적 재활을 돕는 데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카다피 원수가 지난해 미국 영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압둘라 왕세자 살해 계획을 승인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 이후 카다피에 대해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국제적 관심이 돼 왔다.
애덤 어럴리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아직 그 보도의 진실성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고 말해 암살 음모설이 양국 관계 복원의 의미를 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시위 효과'는 미국의 또 다른 노림수다. 지난해 12월 리비아가 핵무기 개발 계획 포기를 선언한 이후 미국이 미국인의 리비아 여행을 허용하고 리비아에 대한 대부분의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한 데 이어 국교를 정상화하기까지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숨가쁜 행보를 통해 미국은 북한과 이란에 리비아의 전례를 따를 경우 돌아올 당근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을 포기하라는 압박의 수위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을 보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그대로 수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다. 리비아가 핵 개발의 한계를 절감한 끝에 핵무기를 포기했다면 북한은 최소한 2기의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게 미 정부의 자체 정보 판단이다. 핵 무기 개발 측면에서 북한과 리비아는 결코 동급이 아니라는 얘기다.
'리비아 모델'이 영국을 통한 오랜 간접 대화와 미국·리비아간 직접 비밀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은 최근 3차 6자 회담을 통해 핵 동결 및 상응조치를 협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많은 이견의 돌파구를 찾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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