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신문 구독률이 가장 높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스칸디나비아 3국인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다. 전 세계적으로 신문이 인쇄매체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북유럽 나라들이 유독 신문 구독률이 높은 것은 왜일까? 최근 한국신문협회를 대신해서 북유럽의 여러 신문사를 방문하면서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북유럽은 일단 신문을 읽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햇볕이 적어 채광을 극대화한 건축과 인테리어, 조명이 발달한 것처럼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신문도 열심히, 많이 읽게 된다. 또 아침식사를 길게 즐기는 습관이 있어 식사를 하면서 읽는 조간 신문도 오래 잡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서 신문산업이 발전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신문이 경쟁력을 가지고 생존하기 위해서 치열한 물밑 작업을 하는 덕분이다. 북유럽의 신문들은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전해야 한다는 서비스 마인드가 철저하다. 신문이 발행되는 지역의 주민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가수가 가창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듯, 신문이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전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신문을 독자에 대한 서비스로 보지 않고 하나의 '권력'으로 볼 때는 이런 당연한 명제가 새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북유럽의 신문독자는 그야말로 '지존무상'의 존재다. 독자들의 요구와 필요에 밀착된 기사와 콘텐츠로 꾸며진 지면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독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다. 독자들의 의견은 단순히 독자투고 정도로 처리되지 않고 칼럼으로 등장한다.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독자들의 의견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받아서 그날 신문에 게재하기도 한다.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자주 조사한다. 독자들이 편리하게 들고 다니면서 읽기 쉽도록 신문 판형을 바꿔 달라고 하면 바꾼다. 타블로이드판으로는 대형 광고수주를 상실하는 손해가 있겠지만, 용지대를 절약함으로써 비용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 중심의 기사를 많이 실어 달라는 요구도 적극 수용한다. 또한 독자 200∼300명을 인터넷 패널로 두고 일년에 4,5차례씩 편집방향, 기사내용 등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서의 삶 전반에 대한 만족도 등을 조사하는 신문사도 있다.
북유럽에서는 오히려 거대 중앙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 규모의 지역신문들이 상대적으로 더 탄탄한 생존력을 갖추고 있다. 거대 중앙 일간지가 고전하는 이유는 우선 충분한 지역정보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 경제, 중앙 정치 뉴스 등은 TV나 인터넷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정보를 전하는 중앙지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반면 작은 규모의 신문은 독자들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또 '메트로' 같은 무가지가 스웨덴에서 시작된 것처럼, 북유럽에서는 무가지의 경쟁력이 높다. 구인광고, 부동산광고 등은 거의 무가지 시장이 장악하고 있다.
신문사간에 전국적으로 시장중첩이 별로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같은 시장을 놓고 많은 신문사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신문사들이 공동배달회사를 설립하기도 하고, 광고영업을 위해 공동회사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995년에 헬싱키의 큰 신문 2개와 주요 지역신문 28개 등 도합 30개 신문사가 공동 투자하여 만든 '카르키미디아'다. 이는 집중화한 광고 마케팅, 판매, 서비스를 위한 것이며 일종의 원스톱 서비스체제로 광고주가 신문에서 광고지면을 구입하는 절차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이런 원스톱 서비스체제를 통해서 신문은 광고 부문에서 TV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여러 종류의 협력사업은 신문사 사이에 서로 시장이 중첩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동배달이나 광고영업, 온라인 및 모바일 서비스 뿐만 아니라 편집부문에서도 공동협력을 하고 있다. 지방 신문사들은 일요일판이나 피처 기사를 공유하는 협력을 통해 비용도 절감하고 기사의 질도 높이는 윈―윈 전략을 펴나가고 있다.
핀란드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보면, 1면이 전면 광고라는 점이 특이하다. 1면 전면 광고는 우리 정서로는 경악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핀란드의 대표적인 신문인 '헬싱키 소노마트'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1면은 전면 광고로 내보내고 있다. 지역신문에서도 그 신문이 지역주민들의 것이라는 인상을 심기 위해서 그 지역의 작은 사업체 광고로 1면을 채우기도 한다. 놀랄만한 일이지만, 이것도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 보는 것이다.
북유럽 신문산업은 노사분규의 쟁점도 특이하다. 임금인상이 아니라, 저작권이 주요 쟁점이다. 기자의 기사를 신문사가 인터넷에 올리거나 공동편집회사를 통해서 다른 신문에 실을 경우에 기자가 거기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를 받아야 하는지가 논란이다.
신문사에서는 당연히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권리이고, 기자 개인으로서는 마땅히 인정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독자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 그리고 신문사간의 효율적인 공동협력시스템을 통해서 북유럽 신문산업은 치열한 매체경쟁시대에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새 디자인, 새 포맷"/세계신문협회 "신문의 미래" 보고서
지금 한국 신문이 안고 있는 고민은 대부분의 외국 신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적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독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신문협회(WAN)가 최근 발간한 '2004 세계 신문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7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간지의 수는 2002년 대비 1.48% 증가했으나, 부수는 오히려 0.12% 감소했다.
세계신문협회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신문의 미래를 그리다' (Shaping the Future of the Newspaper)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해마다 전략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올해는 6개의 새로운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각국의 사례를 담은 이 보고서들을 보면 신문산업의 흐름과 새로운 환경에 맞춰 신문의 영향력을 제고하고,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외국 신문들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보고서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포맷'. 신문의 형식에 관한 이 보고서는 많은 신문들이 작은 사이즈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취향에 맞춰 대판에서 타블로이드로 판형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뉴스를 선호하면서도, 차분하게 뉴스를 읽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대의 독자들을 위해 기존의 지면 관습을 깨는 새로운 형태의 포맷들을 제시한다.
미래의 신문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주요한 영역은 모바일이다. '모바일 기회'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신문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한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면 독자 및 광고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고, 아직 신문을 읽지 않는 다음 세대 독자들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모바일 비즈니스를 위한 50개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배포의 승자'라는 보고서에서는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타임스, 오스트리아의 클라이네 자이퉁, 터키의 포스타 등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부수를 늘려가고 있는 18개 신문사의 성공을 분석한다. 이들 신문의 공통점은 장기적인 관점, 독자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 철저한 독자 서비스, 젊은 기자들의 적극적인 활용, 여성 독자에 대한 배려 등이다. 모두 한국 신문들이 흘려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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