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점령통치 14개월 만에 이라크 주권을 임시정부에 넘겼다. 예정을 이틀 앞당긴 것은 주권이양에 때맞춘 저항세력의 총공세를 피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같은 날 개막한 나토 정상회담에서 유럽 동맹국들의 지원을 설득할 명분을 얻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그만큼 실질과 관계없이 모양 바꾸기에 무게가 실렸다.주권이양은 형식적으로 점령통치가 종식되고, 이라크의 장래를 이라크 국민이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실질은 전혀 다르다. 미 군정이 임명한 임시정부는 정통성부터 갖추지 못했다. 또 군정이 선포한 법률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 권한이 없다. 하부 국가조직은 무너졌고, 외국군과 석유수입을 통제 관리할 권한도 없다. 군과 경찰도 조직과 훈련을 맡은 미군이 사실상 지휘한다. 임시정부 자체가 내년 1월 과도정부 선출 때까지 존재한다. 미국은 직원 3,000명으로 세계최대 규모인 바그다드 대사관을 통해 실질적 통치를 계속할 게 분명하다.
미국은 주권이양으로 저항 공격이 이라크 정부를 향한 것이 되는 효과를 기대한다. 자신은 뒷전으로 물러서 이라크의 자력갱생을 지원하는 자세를 취해, 이라크 국민 스스로 혼란에 염증을 느끼고 저항세력에 등을 돌리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미 점령통치 안정에 실패한 미국이 미군과 동맹군 16만명을 유지한 채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이 많다.
그런대로 관건은 임시정부 체제에서 치안과 민생 안정을 얼마나 빨리 이루는가에 있다. 미국은 나토 동맹의 적극 지원을 바라지만, 미국 여론조차 이라크 점령정책을 불신하고 장래를 회의하는 마당에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혼돈된 상황을 그대로 안은 채 민주화 시간표 실행에 들어간 미국은 스스로 시간과의 불안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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