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는 미국인을 멀리하라"영국신문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얼마 전 이라크 취재를 떠날 때 미국인 동료에게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고 썼다. 이라크 전쟁을 줄곧 취재한 동료는 특히 미군을 종군 취재하거나, 미군물자 호송대와 동행하는 것은 저항세력의 표적이 될 위험이 큰 현지 실정을 진솔하게 일러준 것이라고 클라인은 덧붙였다.
충격적인 김선일씨 사건 직후 파병철회 논란을 벌인 우리 사회는 어느새 정부의 그릇된 대응을 따지는 데 온통 매달리고 있다. 잘못은 추궁해야 하지만, 사건의 본질과는 멀어졌다. 사건 자체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여러 의혹을 풀 실마리를 찾고,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길이라고 본다.
김씨의 불행은 베테랑 미국기자가 피하라고 충고한 미군물자 호송대와 동행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미국기업 KBR(Kellog Brown & Root) 호송대를 따라 팔루자 근처를 지나다가 KBR 경호요원 여러 명과 함께 납치됐다. 미 군수기업 핼리버튼 계열인 KBR을 우리언론은 사설경호업체라고 언급했을 뿐이고, 국제언론도 납치된 KBR 요원에 관해 후속보도를 하지않고 있다.
KBR을 주목할 이유는 다인코프 크롤 비넬 등과 더불어 미군이 하청준 '전쟁용역'을 도맡았고, 그 민간요원 수만 명이 저항세력과 일선에서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 민간전쟁요원은 미군시설 경비와 물자호송은 물론, 포로심문과 정보작전 등 전쟁에 깊이 가담한다. 이에 따라 미군보다 이라크 인들의 적대감이 높고 주된 공격표적이 되고 있다. 납치 살해 등 피해도 미군보다 많다.
특기할 것은 민간요원의 역할과 피해를 미군이 숨기는 점이다. 이들은 대개 미국 영국 남아공 칠레 등의 특수부대출신 전문 용병이다. 구르카 용병 등 아시아인도 많다. 이들은 하루 최고 1,000 달러를 받는 대신, 죽어도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미국이 용병을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병력부족도 메우지만, 미군 피해에 따른 국내여론 악화를 피하려는 것이다.
애국적 미국 언론도 전쟁용역회사와 용병의 역할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미국인 참수사건 등 잦은 납치도 저항세력이 공개할 때만 뒤따라 보도하고, 그마저 늘 의혹을 남긴다. 이를테면 미국 언론은 참수된 미국인이 일자리를 찾던 순진한 청년이라고 전했으나, 유럽 언론은 용병으로 추정한다.
김씨의 참변은 이런 정황에서 발생했다. 팔루자는 저항세력 집결지이고, 팔루자 시민이 많이 갇힌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와 가깝다. 이 곳 저항세력이 두 달 전 미국인 등 용병 4명을 납치 살해한 뒤 거리에 끌고 다닌 잔혹행위를 한 것은 용병과 수용소 학대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다. 이에 미군은 해병여단으로 팔루자를 포위공격, 1,000명 가까운 민간인을 죽였다. 저항이 완강하고 국제여론이 들끓자 봉쇄를 풀었으나, 납치 등 게릴라 공격과 보복 폭격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실체가 불분명한 알 자르카위 등 테러집단을 부각시키지만, 상황을 호도하는 측면이 짙다.
김씨가 억울하게 희생된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추정할 수 있다. 가나무역은 미군 PX에 식료품을 납품했다지만 김씨는 미군기지 출입증 등을 소지했을 것이고, 저항세력은 미군 협력자로 지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를 파병철회 요구에 희생양 삼은 것도 납치한 뒤 궁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여러 의혹을 풀 실마리는 쉽게 발견된다. 미군과 KBR이 용병납치를 보안하는 마당에, 작은 하청업체 가나무역이 김씨 납치를 떠들 수 없었을 것이다. 김씨 비디오를 입수한 미국 AP 통신이 확인취재까지 하고서 침묵한 이유도 애국적 관행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출신인 칼럼니스트 클라인은 이렇게 썼다. "테러위협은 미국을 추종한 탓이다. 미국인이 아닌 특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