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27일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관련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유능한 직원들을 영사부나 아중동국으로 집중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재외국민 영사업무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외교부는 영사국의 영사실 승격이나 영사업무 담당 차관보의 신설 등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고위 당국자는 "영사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뒷북치기 대책으로 한번도 실천된 적이 없다"고 냉소적으로 평했다.김씨 사건을 계기로 외교부 영사업무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글로벌 마켓'을 상대할 정도로 교역이 확대되고 해외여행자수도 기하급수로 늘면서 재외국민 안전을 위한 영사업무는 항상 수요에 비해 서비스는 태부족이었다. 그러나 영사업무 시스템이나 이를 바라보는 외교부 내 인식은 큰 변화가 없었다.
외교부의 영사업무가 가장 힘겨운 시험대에 올랐던 때는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이 처형됐던 2001년. 중국측이 아무런 통보없이 처형했다고 주장하던 우리측은 중국정부가 사전에 보낸 팩스문건이 발견되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시해야 했다. 당시 외교부는 뼈를 깎는 반성을 약속하며 영사업무 강화대책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외교부는 또 다시 영사업무 강화를 외치고 있다.
현재 재외국민 영사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재외국민영사국 영사과의 직원은 과장을 포함해 단 6명. 올들어 이라크에서 한국인 피랍 등 영사사건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이들은 거의 매일 밤샘작업을 하고 있다. 영사업무를 현장에서 다뤄야 하는 해외공관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700만명에 달하는 해외교민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전체 공관원이 900명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라크에도 대사관 직원은 9명으로 절대부족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영사업무 '일손부족'은 시급한 해결과제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영사국 확대계획은 예산편성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하드웨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외교관들의 대교민 서비스의식 부재다. 동남아지역에서 현지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김모씨는 "사업상 현지 정부와의 문제로 우리 대사관을 자주 찾았지만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요즘 동사무소 직원도 친절경쟁을 하는 세상인데 대사관 직원들은 교민들 위에 군림하려한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다. 외교부내에서 영사파트는 예나 지금이나 '기피부서'로 꼽힌다. 고위 정책협상이나 의전 등의 화려한 측면이 외교관 생활의 전부라는 마인드가 외교부 내에 온존하고 있다. 재외공관의 영사담당으로 발령나면 '물먹었다' '있는 동안 몸조심해라'는 위로의 말이 나올 정도다. 한태규 외교안보연구원장도 "외교부가 정무중심이고 영사업무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 왔던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외교관들이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 재외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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