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 기업을 빼면 대기업 경영사정이 중소기업보다 더 어렵고, 잘된다는 수출도 채산성이 나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전반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고 수출이 내수부진의 골을 메워 경제를 지탱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주장을 곧이듣고 그러려니 믿었는데 국책 연구기관이 이런 보고서를 내놨으니 걱정은 더 커진다.KDI의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성과에 대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약 1만개 표본기업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현재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부실기업이 27.5%나 되었다. 전체 산업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것을 다시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은 98년 0.95에서 2003년 3.6으로 높아졌으나 이는 빚을 많이 갚고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이지 수익성이나 기초여건이 좋아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수출기업의 실태는 상식을 뒤엎는다. 삼성전자 1개사를 제외하면 99년 이후 수출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내수기업보다 낮아 수출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28.1%에 달했다. 이른바 하이테크 기업의 부실도 내수·저기술 기업보다 심해 우리 경제를 수출과 첨단산업이 지탱해 준다는 것도 허구임이 드러났다.
경제정책이 헛돌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통계의 착시현상에 홀려 맥을 잘못 짚었으니 제대로 된 처방전이 나올 수가 없지 않은가. 최근 일본 후지제록스의 고바야시 요타로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90년대 초반 이후 장기불황에 빠진 것은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은 바로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경제흐름의 맥을 정확히 짚지 못하면 우리도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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