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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머니의 반짇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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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머니의 반짇고리

입력
2004.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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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어머니의 반짇고리는 그 집안 살림살이의 종합세트다. 어린시절 나는 어머니의 반짇고리를 열어보는 것이 또 하나의 마술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즐거웠다. 어머니가 우리 몰래 반짇고리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그 속엔 없는 것 없이 아기자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이 골무다. 바느질을 할 때 쓰는 가죽 골무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작은 복주머니 하나 가득 들어있는 '고치 골무'였다.

시골의 들일은 늘 험해서 매발톱보다 억센 장정들의 손톱까지 갈라지고 헐게 만든다. 그런데도 풀은 사정없이 자라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논김을 매고 밭김을 매야 한다. 바느질에만 골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들일에도 골무가 필요한데, 그 준비를 어머니가 하는 것이다. 봄가을로 누에를 쳐 고치를 딸 때 수십 개의 상한 고치가 나오는데, 그 고치의 한쪽 귀퉁이를 자르면 바로 골무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릿속엔 논으로 김을 매러 나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끝에 하얀 '고치 골무'를 끼워주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밀레의 '만종'처럼 남아 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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