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억불 들여 올 거에요. 다들 그렇게 알아요.”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영애 권상우를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탤런트로 꼽힌 최불암(65)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흉내낸다. ‘파~’하는 너털웃음과 정감 어린 말투로 축약되는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은 온데 간데 없다.
7월 5일부터 시작되는 MBC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에서 정주영 회장을 모델로 한 캐릭터인 천태산 역을 맡은 까닭이다. “젊은 시절의 천태산은 차인표가 맡았고 5.16 이후는 내가 맡았지. 1~2회 천태산 회장의 넷째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잠깐 얼굴을 비춘 다음 30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출연할 예정이야.”
정 명예회장과 그는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1983년 MBC ‘야망의 25시’에서 정 명예회장 역을 맡았던 걸 인연으로 92년 그가 ‘통일국민당’을 창당했을 때 발기인으로 참여해 국회의원까지 당선됐다. 2003년 8월 8일 정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구상 시인의 추모시를 대독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혹, 그 분께 누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땐 안 하겠다고 했지. 하지만 어차피 방영되는 드라마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아 엉뚱하게 연기하면 더 걱정스러울 것 같았어.”
‘영웅시대’로 인한 최불암씨의 마음고생은 그뿐이 아니다. “방송국에서는 자꾸 천태산이 정주영 회장과는 다른 인물이라고 하는데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를 팔아~’로 시작되는 그 양반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억지로 흉내를 내면 그것도 코미디겠지만, 10분의 1정도는 정 회장과 비슷한 냄새를 풍겨야 시청자들이 납득을 하겠지.”
“대본을 읽다가 정 명예회장과 관련 돼 틀린 사실이 있으면 자료조사가 잘 못됐다고 알려준다”는 그는 ‘10분의 1’론(論)을 구체화 하기 위해 정 회장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낸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않아. 이북사투리도 아니고 강원도 사투리도 아닌데다 ‘~했걸랑요’ 같은 서울말도 섞어 쓰셨고… 다른 사람 같으면 심각하게 할 말은 아무렇지도 말하는 스타일이셨으니까.”
따지고 보면 ‘수사반장’ ‘전원일기’를 통해 때로는 강인하고 때로는 인자한 한국의 아버지 상을 그려낸 그만큼 천태산(정주영) 회장 역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도 없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모습에 100%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동안 너무 노역만 해서 좀 그랬어. 30대에는 쉰 살 먹은 수사반장을 했고, 마흔 살에는 ‘전원일기’에서 당시 예순 다섯이던 양촌리 김 회장을 했으니까. ‘전원일기’가 흑백으로 방영될 때는 그래도 괜찮더니 칼라 TV가 보급돼 얼굴에 주름을 그린 게 다 티가 나니까 민망하더라고.”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근래 그가 브라운관에서 보여준 모습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MBC 드라마 ‘리멤버’에서는 악역에 가까운 고아원장 문석천 역을, 주말드라마 ‘죽도록 사랑해’(2003)에서는 바람둥이 식당사장 장일도 역도 맡았다. “요즘? 오지명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첫 작품인 ‘까불지마’에서 15년 만에 ‘큰집’에서 출옥한 의리의 주먹 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고 있어.”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한국의 대표하는 배우’라는 큰 짐을 어깨에서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니다. “몇 일전 한 아주머니가 날 붙잡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그런 연기를 선생님이 보여주셔야 한다’고 하며 울먹이는데 가슴이 먹먹해 지더군.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릴 ‘영웅시대’가 모쪼록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면서 꿈을 꿀 수 있는 드라마가 되면 좋겠어.”
‘인간적’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이 대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꿈을 보여줄까?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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