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벌써 은퇴해야 한다니 서운합니다."국립과학수사연구소 생물학과장 최상규(58) 박사에게는 늘상 '과학수사의 아버지'란 별칭이 붙어 다닌다. 국내 생물학 분야의 1인자인 그가 1991년 유전자(DNA) 감식기법을 처음으로 들여온 후 국내 수사계가 비로소 '과학수사'란 이름으로 미궁에 빠질뻔한 각종 사건 사고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5년간 국과수에 재직한 최 박사는 30일 정년퇴임하면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서울대 생물학과를 거쳐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가톨릭 의대를 시작으로 경찰종합학교, 국방부 범죄수사단 등에서 생물학 강의를 하다 2년 간의 독일 유학을 거쳐 1979년 국과수에 특채된 뒤 지금껏 DNA 감식 연구를 위해 35년을 실험실에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지난 세월에 대한 정리 차원에서 그간 담당한 각종 사건들을 '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해바라기 발간)이란 저서에 담았다.
최 박사가 도입한 DNA 감식기법은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구조를 이용해 조회대상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으로 영국에서 85년 개발됐다. 강력사건 현장에 남은 머리카락 한 올, 담배꽁초에 묻은 타액, 휴지에 묻은 정액, 흩어진 피부 조각 등 어느 것이든 미량의 인체 유류물이 신원판별 단서가 되며 오차 확률이 10억분의 1 수준일 정도로 절대적인 감정기법으로 통한다.
그는 "DNA 감식기법 도입 이전의 국내 경찰 수사는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이었다"며 "경찰 고위 관계자들을 찾아 다니며 기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막상 들여온 뒤에도 해당 사건마다 일일이 수사관에게 설명을 해줘야 간신히 이해하는 등 제도 정착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간 최 박사가 담당한 강력 사건만 해도 3만여건. 삼풍백화점 붕괴와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과 같은 대형 참사 한 가운데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그중 KAL기 괌 추락사고 때 시신 121구의 산산조각난 유해를 6개월 가량 연구실에서 씨름한 끝에 유족에게 인도한 것과 문화재관리국의 의뢰로 백범 김구 선생의 유전자 정보를 처음 밝혀낸 일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사현장을 떠나면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범죄사건 해결에 시급한 '유전자자료은행(DNA데이터 뱅크)을 제도화하지 못한 점이다. 그는 "DNA 데이터를 전산입력해 관리한다면 인도적 차원의 무연고 변사자 등의 신원확인과 실종자 미아찾기가 수월해 지는데다 갈수록 흉포화되는 강력·지능범죄 해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정년 퇴임 후 동국대에서 객원교수로 나가 법의학을 강의하는 한편 99년 '슬픈 만남'이란 추리소설을 집필하면서 입문한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로서의 역할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그는 "정년 퇴임은 서운해도 한 평생 무고한 사람의 혐의를 벗기는데 기여한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가장 심하게 훼손된 시신만 보고 살아온 탓인지 살아있는 매 순간을 항상 뜻있게 보내야 한다는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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