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랍과 피살 보도는 언론보도가 추구하는 양면적 가치의 대립을 보여줬다. 뉴스의 신속성과 정확성 사이의 갈등, 인질의 신상과 피살 정보 제공의 무제한 허용과 한계설정 사이의 갈등, 그리고 대응논리로 제시된 ‘응징론’과 ‘국익론’ 사이의 갈등 따위다.먼저 대부분의 신문이 23일자에서 이미 피살된 김씨가 살아있다고 ‘오보’한 것은 인쇄매체 제작상의 기술적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 당일 새벽 2시경 확인된 김씨의 피살소식을 뒤늦게 신문에 실었지만, 배달지역이 일부에 국한됐다. 조간신문을 먼저 읽고 안도의 숨을 쉬었던 시민들은 곧 이어 방송을 통해 비보를 들어야 했다. 한국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24일자에 일제히 ‘사과 드립니다’는 내용으로 독자에게 보도과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정확성 못지않게 신속성 역시 언론보도의 양보할 수 없는 요소다. 미국계 통신사인 AP통신은 알 자지라 방송보다 17일이나 앞서서 김씨의 피랍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했다. 김씨의 피랍 사실을 우리 외교부 담당자로부터 확인받지는 못했지만, 긴급사건의 경우 예외적으로 신속한 미확인 보도 역시 뉴스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 그러나 AP는 더 이상 취재를 시도하지 않았고, 비디오 테이프 공개를 지체한 데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시민단체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AP의 무책임한 보도로 김씨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인질 관련보도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가도 논란거리다. 김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언론은 김씨의 신상에 관해 상세히 보도했다. 그 중 테러집단에 적대적인 미군 관련업무와 목사 지망자라는 신상정보는 김씨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취급돼야 할 내용이었다. 그러나 넘치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둘러싼 숱한 의문점은 해소되지 않았고, 김씨의 유족은 진상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김씨의 참수장면을 담은 동영상의 경우 비디오 테이프를 전달 받은 알 자지라 방송마저도 방영을 거부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전파됐다. 참수장면이 유발하는 고통과 혐오감이 사이버 공간상의 유통을 금지하는 근거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전쟁의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실체를 확인하고,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씨 피살사건을 전하는 신문의 논조도 대조적이었다. ‘반인륜적 테러, 응징 못하면 문명국가 아니다’(조선일보 24일자)가 시민의 흥분된 감정에 편승한 ‘응징론’이라면, ‘파병철회가 현실적인 국익이다’(한겨레신문 24일자)는 감정을 차분히 가다듬고 파병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한 ‘국익론’이었다.
김씨의 희생은 우리정부의 외교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언론의 보도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 언론은 피랍 이후 과정을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정부와 마찬가지로 아랍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피해 당사자의 처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 특히 AP통신은 인질 생명과 직결되는 뉴스임에도, 적극적인 취재를 외면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에만 충실했다는 윤리적인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우리 시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테러 대응보도 시스템을 생각할 때다. 삼가 고 김선일씨의 명복을 빈다.
이진로/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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