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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호아킨 코르테스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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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호아킨 코르테스 '라이브'

입력
2004.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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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종문화회관이 새롭게 개관해 볼 만한 공연이 많지만 광화문 촛불집회가 잦은 만큼, 매번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그날의 집회 주제가 늘 뒷머리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스페인 플라멩코 무용수 호아킨 코르테스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간 24일에는 이라크에서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으로 마음이 더욱 무겁고 산란해져 공연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코르테스의 내한공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퍽이나 드문 플라멩코 공연이어서 우선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공연의 춤과 음악이 정통 플라멩코가 아닌 '뉴 플라멩코' 혹은 '퓨전 플라멩코'라 불리는 것이어서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예술 장르간의 퓨전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알지만, 스페인의 플라멩코가 본래 어떤 예술인지를 우리관객이 제대로 알기도 전에 퓨전 플라멩코부터 접하게 될 위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대에서 보여준 그의 춤은 플라멩코의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요구하는 사파테아도(발구르기)를 음악으로 대충 메우지 않고 혼신의 열정으로 정확하고 성실하게 해냈으며, 그 탁월한 기교는 신기(神技)에 가까울 정도였다. 또 플라멩코에서 여성의 동작에 비해 규범과 제약이 철저한 남성의 팔과 손 동작을 지극히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방식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성악가나 연주자처럼 자기 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도취된 채, 넓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압도하며 온갖 실험을 펼쳐보였다.

칭찬을 갈망하는 어린애처럼 관객의 뜨거운 반응과 갈채를 유도하고 때론 강요하는 코르테스의 분방한 무대 매너에서 폭발하는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유대인보다 더 심한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집시들의 깊은 한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읽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더 큰 감동의 주체가 된 것은 무대 위에서 코르테스와 호흡을 같이한 17명의 연주자들이었다. 칸테(노래), 기타, 바일레(춤). 이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는 플라멩코에서 원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칸테는 탄생, 결혼, 죽음 같은 경조사에서 공동체의 기쁨과 고통과 슬픔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기능을 지닌다. 이날 연주된 음악 속에 유럽 클래식부터 재즈, 남미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가 혼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와 연주자들의 음악적 깊이와 완성도는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드는 플라멩코의 참맛을 알려주었다.

연주자와 관객이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된 공간적 제약, 음향 증폭장치를 사용한 점이 아쉬웠지만, 이날 이들의 음악과 춤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온갖 슬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끝까지 살아 남아라" 라는 집시들의 전통적인 호소를 가슴에 담아가지 않았을까. 공연은 28일까지.

이용숙/음악 칼럼니스트· '춤에 빠져들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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