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200여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한 '언론개혁국민행동'(국민행동)이 출범했다. 이들은 "한국 언론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는커녕, 사적 이익추구 집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면서 "올 하반기 신문법 제정과 방송법 개정 등 입법화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언론에 대한 비판과 개혁요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처럼 대규모 연대기구가 결성돼 조직적 운동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방송보다 신문개혁에 무게를 실은 것을 두고, 한편에서는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언론 죽이기"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개혁의 필요성과 과제를 논의하기보다 신문개혁이 먼저냐, 방송개혁 우선이냐는 불필요한 정쟁이 벌어졌다.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탄핵정국 이후 더욱 첨예화한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행동의 주장에 대한 찬반을 떠나 언론이 지금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 최근 발표된 한국언론재단의 '2004 수용자 의식조사'에서 언론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9.5%에 그쳤다. 특히 신문(중앙지)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7.9%로, 군사정권 시절인 1984년(49.4%)보다도 훨씬 못하다. 더구나 속보성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무장한 인터넷 매체가 급성장하고 1인 미디어 '블로그'가 활성화하면서, 신문과 방송이 사회의제에 관한 여론형성을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옛 말이 됐다. 싫든 좋든 언론 스스로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언론개혁 논의는 방송보다는 신문에 쏠려 있다. 국민행동은 규제 중심의 정기간행물법을 없애고, 신문산업의 진흥에 초점을 둔 신문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문법의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소유지분 제한이 대표적이다. 국민행동은 사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1인의 소유지분 상한선을 30%로 할 것을 제안했으나, 사유재산권 침해라거나 실효성이 없다는 등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와 연계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 역시 찬반이 나뉘어있다. 편집규약 제정, 노사 동수 편집위원회 구성 등 편집권 독립방안도 그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언론사 자율에 맡기자"는 반론이 적지 않다.
반면 신문고시 강화 등을 통해 혼탁한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신문 정기구독률이 급락하면서 자전거, 상품권 등 경품 살포가 더욱 기승을 부려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최근 한국언론학회가 전국 신문지국 2,53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시장질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71.6%, 과열 판촉활동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79.7%에 달했다. 시장질서 정상화는 다양한 언론의 공존을 위해서도 필수적 과제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송 분야에서는 한나라당이 주축이 된 공영방송(KBS, MBC) 개혁 논의와 국민행동이 추진중인 SBS 등 민영방송 개혁이 맞서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개혁론은 정치공세의 성격이 짙어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한 상태다. 다만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KBS의 방만한 경영실태가 드러난 만큼 근본적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탄핵방송으로 불거진 공정성 논란에 대해서도 시비에 앞서 방송사의 자성이 필요하다. 이와관련 공영방송의 모델로 불리는 영국 BBC가 24일 이라크 전쟁에 관한 오보 파동을 반성하고 공정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사내 언론대학을 설립, 기자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언론이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 떠넘기기'나 '상대방 헐뜯기'에 골몰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건강한' 논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 본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우리 국민 10명중 8명 이상이 언론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편파보도로 인한 여론의 왜곡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 2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2.9%는 언론개혁이 '매우 필요하다', 52.2%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없다'(별로 7.9%, 전혀 1.6%)는 9.5%에 그쳤다.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대(91.1%), 30대(92.7%), 화이트칼라(91.8%), 대학 재학 이상(89.5%) 등 나이가 어리고 고학력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언론의 최대 문제점으로는 '편파보도를 통한 여론의 왜곡'을 꼽은 응답자가 58.1%로 가장 많았고, 사주의 과도한 개입과 전횡(14.6%), 인권침해(10.3%), 경품살포를 통한 시장질서 붕괴(6.1%)가 뒤를 이었다.
언론개혁이 가장 시급한 분야로는 50.7%가 방송, 30.3%가 신문, 13.9%가 인터넷 매체를 꼽았다. 방송은 50대(60.2%), 가정주부(59.0%), 대구·경북(63.2%)에서, 신문은 화이트칼라(40.7%), 서울(40.5%)과 광주·전남·전북(43.4%)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광주·전남·전북은 방송 개혁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39.4%로 유일하게 신문보다 적었고, 대구·경북은 신문 개혁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14.3%로 가장 낮아 대조를 보였다.
언론개혁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편집권 독립이 36.5%로 응답률이 가장 높았고, 언론사주 소유지분 제한 19.6%, 시장독과점 해소 15.4%, 신문 공동배달제 확립 8.8%로 나타났다. '언론개혁이 누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시민단체(44.8%)가 언론 자율에 맡겨야 한다(33.0%)를 앞섰다. 현업 언론인들의 자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를 꼽은 응답자는 20대(54.9%), 30대(53.3%), 대재 이상(49.7%), 화이트칼라(51.9%) 등 저연령, 고학력일수록 많았다. 반면 국회는 9.9%, 정부는 6.8%에 그쳤다.
/이희정기자
■전문가 제언/언론산업 육성차원 신문법 제정 추진돼야
최근 신문개혁 입법(신문법 제정)과 신문시장 정상화 등을 중심으로 언론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신문 유료 구독률과 신뢰도의 급격한 감소, 신문산업의 수익구조 붕괴 등 신문(신문산업)의 위기를 반영하여 신문을 살리기 위한 신문개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신문고시 등 현행 법제도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신문시장 정상화가 신문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신문개혁 입법도 신문 살리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신문법 제정 논의에서 제안 취지가 '신문 살리기'라는 점은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신문시장의 위기는 거대 신문의 고가 경품과 무가지 대량 배포 등 무한경쟁과 무료신문의 등장으로 이제 전체 신문산업이 공멸할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신문법 제정은 신문배달공사 등을 설립하여 신문시장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신문발전 기금을 조성하여 여론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중소신문을 지원해서 신문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신문법의 제안 취지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특정 신문 죽이기', '특정 신문 키우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식의 오해와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신문법은 정치권에서 제안된 것이 아니라 이미 작년에 시민언론운동 진영에서 신문의 여론 독과점 해소와 신문산업의 진흥을 위해서 제안한 것이다. 신문개혁 입법의 핵심도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와 신문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신문의 내적 자유(편집자율성)와 외적 다양성(다원성)을 제고하고 신문시장을 공익적 시장질서를 재편하여 신문산업을 진흥하자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소유지분 분산이나 편집위원회(편집규약) 설치 등이 검토되고 있다. 그럼에도 편집권 독립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소유지분 분산이 마치 신문개혁입법에서 가장 핵심 사안인 듯 크게 부각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밖에 신문법 제정 논의에서는 신문의 여론독과점을 해소하고 여론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한 시장점유율 규제 등의 수단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방식(개별 사업자 50%, 상위 3개 사업자 75%)을 준용하되, 여론상품이란 신문상품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강화하려는 것뿐이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3개 신문 사업자의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이 75%를 넘어서고 있다. 동시에 상위 3개 신문사업자가 보여주는 논조의 유사성은 이른바 '편집동맹'이라는 지적을 받기까지 한다. 여기서 언론자유는 다양한 의견(여론)의 존재에서 나온다는 진리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신문법 제정의 여러 가지 쟁점들은 합리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입법화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신문개혁과 함께 방송개혁도 추진되어야 한다. 방송개혁은 민영방송뿐 아니라 공영방송을 포함하여 공익성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방송개혁이 추진되어야 하며, 최근 방송의 공정성 논쟁도 방송저널리즘의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정성 개념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용성 한서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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